출애굽기 40장 [열기]



성막이 완성되어 거룩하게 구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그 영광을 충만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약속을 삼으신 이래, 또 하나의 역사. 이로써 이스라엘은 자나깨나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실재하심과 인도하심을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구름 기둥의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함을 몸으로 배워나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게 구별하셨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해주셨다. 그리고 구름과 불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해주시고, 구름의 떠오름과 가라앉음으로 우리가 갈 때와 멈추어야할 때를 일러주신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만약 혼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모를 것이다. 불교처럼 꾸준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의지할 데 없는 고독 속에서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 얼마 못가 거꾸러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나아갈 때를 일러주시고,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신다. 고독이란 우리가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고, 교제하는 처소임을 알기에 기꺼이 고독을 맞이한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패니 크로스비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알고 삶을 통해, 찬송을 통해 증거했다.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과 아브라함과 다윗과 엘리야를 그리워하고 욥과 다니엘, 베드로처럼 살기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다. 예수께서 주신 가장 큰 은혜, 그것은 바로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누리면 된다. 하나님이 성막에 내려오실 때 기뻐했던 이스라엘 자손처럼, 그와 동행했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함께 누리면 된다.

2007/09/12 12:27 2007/09/12 12:27

출애굽기 39장 [열기]



여우의 집에는 넓적한 접시가 있고, 두루미의 집에는 입이 가느다랗고 길쭉한 병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집에 초대되어도 한 쪽은 굶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또 국은 넓은 대접에 담아야 하고, 전이나 부침은 얇은 접시에 담아야 한다. 이렇듯 서로의 생김이나 용도에 따라 맞는 그릇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물건의 1차적인 용도 이외에 중요한 것이 더 있는데, 바로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과 십자가. 많은 사람들이 헌금은 아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몸집을 불려주며, 목회자의 배를 부르게 하는 일반적인 현금의 용도 이외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십자가는 로마시대를 전후해서 중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처형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물건의 1차적 용도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이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 혹은 기타 종교인들도 역시 - 에게 헌금은 물질적인 돈의 수준을 넘어서고,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 도구의 모습을 탈피한다. 보살피는 은혜에 대한 감사와 섬김의 표현으로 헌금을 드리고, 성육신하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드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표현으로 십자가를 가슴에 품는 것은 물질이 하나님의 위해 쓰여지게 될 때 본래의 용도 이상의 용도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땅 위에 건축된 교회이지만, 단순한 주거 혹은 행사의 장소 이상의 의미를, 그리스도인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브살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각양 성막의 물건들을 만들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화려하게 금장 장식을 입힌 물건을 담는 궤와 촛대, 물건을 놓을 탁자와 튼튼하고 아름다운 장막일 뿐이고, 손씻는 물두멍과 바베큐를 할 수 있는 단, 화려한 옷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질때, 겉모양에 근거한 용도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고, 만지거나 함부로 들어가면 죽을 수 있는 거룩한 물건과 장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모양을 입었다. 그래서 각종 사람의 용도에 맞는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께 사용되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어진 것은 다시 1차적 의미만으로 사용되지 못한다. 강대한 바벨론의 벨사살 왕의 잔치를 기억해보자. 하나님의 기명들은 더이상 먹고 마시는 잔치에 사용될 수 없었다. 한낱 그릇들이 그러할진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사람은 오죽할까. 하나님의 사람들아. 우리를 다시 겉모양대로 사용되는 일에 우리를 낭비하지 말자.

2007/09/11 11:17 2007/09/11 11:17

출애굽기 38장 [열기]



20대 초반의 청년부 생활동안, 꽤 분주한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수련회에는 거의 참석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첫 청년부 수련회 외에는 별 기억이 없다. 첫 청년부 수련회. 1년차 주제에 수련회 기획팀으로 참여한 그 수련회에 인상깊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둘째날이던가 셋째날이던가. 어떤 이유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은데, 아침 예배 후의 첫 프로그램이 대폭 수정되는 일이 발생해서 모든 기획팀이 거의 밤을 새워 새로 준비하는 일이 생겼었다. 모든 일을 끝내놓고 새벽에 복도 소파에 앉아 쉬는데, 갑자기 자매들 몇명이 세면을 하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었다. 기상 시간이 아직 두어시간이 남은 새벽 미명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바로, 몸 단장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감고 말리고, 이러저러한 단장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새벽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여자가 뭘 준비하는지도 잘 몰랐던 당시의 나로서는 컬쳐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성경은 특이하게도 브살렐이 성막 뜰의 물두멍을 만드는데에 사용된 놋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이었다고 증거한다. 다른 모든 재료에 대해서는 그저 이스라엘 자손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었다고만 했을 뿐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 물두멍의 놋에 대해서만 따로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여인들이 보는 거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물을 들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고, 깨끗하고 어여쁜 모습이 사람의 눈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일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만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도 드리고 있는지. 성경은 몸을 단장할 거울을 성막을 만드는 재료로 드리는 여인들을 통해 몸의 어여쁨보다 순종의 어여쁨이 더 좋다고 말씀하고 계신 듯하다.

치료의 목적보다 미용의 목적이 더 강한 라식 수술을 통해, 말씀을 더 많이 보게 되었는가. 십일조를 아껴 쌍커풀 수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뚱뚱해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없어서 다이어트 하는가. 그렇다면 다이어트 후에는 얼마나 자주 무릎을 꿇는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는 시간만큼 기도에 할애하고 있는가. 어여뻐진 모습 때문에 주일에 교회보다는 들과 산으로 나가지는 않는가. 모자란 퇴근 후의 여가시간을 아껴 헬스클럽에서 몸을 만들고서 지쳐 말씀 한장 읽지 않고 잠이 드는 것은 아닌가. 늘어나는 근육만큼 말씀의 지식도 늘어가는가. 배에는 王이 있는데, 마음의 보좌에는 왕께서 계신가.

화장에는 순서가 있다. 아무도 눈썹을 그리고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장에도 순서가 있다. 얼굴을 고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고쳐지지 않고, 단장되지 않고서 겉모습만 고쳐진다면 우리에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먼저 하나님의 성전이 된 후에야 성전을 꾸미는 일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2007/09/10 12:01 2007/09/10 12:01

출애굽기 37장 [열기]



브살렐은 증거궤와 제단 등 성막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설계도대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설계가 충분히 상세하기도 했거니와 모호한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가 모두 알려주었을 것이다. 성경은 브살렐과 모든 일꾼들이 설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대로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면, 쿠와노 신스케와 건설현장 책임자가 다투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신스케의 설계와 다르게 현장 책임자가 임의대로 자재를 바꾸거나 벽지를 바꾸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설계대로 하기를 원하는데, 현장 책임자는 오랜 경험에 의한 판단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을 임의적으로 수정한다는 것은 그 의도를 무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체로 크고 디테일하지 않은 비젼을 보여주신다. 도대체 세부적인 이러저러한 부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기 원하시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설계도나 계획서는 그렇게 두루뭉술하지 않다. 설계대로 만들고, 계획서대로 진행하는 것을 우리에게 맡겨놓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의도가 깊게 반영된 디테일한 설계도를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 설계도를 직접 보는 일은 무척 드물다. 그러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뿐이다. 바로 물어보는 것이다. 현장에서 설계에 대해 모르는 일이 생기면 설계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바르고 빠른 일은 설계자이신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순간순간의 디테일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라. 우리의 경험과 합리적 이성을 통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하나님의 건축물을 성공적으로 완공하고 싶은가? 물어봐라. 세상의 기준에 합당한 합리를 버려라. 합리를 따르는 것은 부실공사의 지름길이다.

2007/09/09 10:59 2007/09/09 10:59

출애굽기 36장 [열기]



하나님께 지은 죄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깨달아서인지, 아니면 성막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드려지는 예물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혹 적을까 하여 모든 사람에게서 예물을 받았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가져오는 예물이 너무 많아서 성막을 짓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수는 없었겠지만, 혹여 실수를 해서 다시 만들게 되더라도 남을 정도였을 것 같다. 상황이 이 정도 되니 성막 공사 현장의 일꾼들이 예물 좀 그만 가져오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이 상황이 지금 이 시대의 이 나라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이 시대에도 많은 청렴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들이 있지만, 아마도 남은 물건과 추가로 들어오는 물건을 빼돌려서 집의 창고에 쌓아두고, 자기 재산을 늘리는데 쓰는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괜한 억측일까? 가끔 사회면에 나오는 목사들의 사건 사고 내용을 보면 그다지 억측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 않나 싶다.

인간은 교활하고 지혜로워서 한가지 주인을 섬기면서 마음으로 또 다른 주인을 섬기기도 한다. 또,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우선 순위의 상위에 놓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에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정답이고, 우리 마음은 하나님만으로 꽉 차 있어야 한다. 다른 우선 순위라는 것은 존재해서도 안되고, 다른 주인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만을 마음에 두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막 공사 현장의 비리와 부조리가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때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두가 그러했으니까.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말라고 듣고 보고 배우면서도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곤 한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을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시키고, 여기서도 옳게 저기서도 옳게 보이기를 원한다. 순수하게 헌금을 드리지 못하고,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며, 부풀려 소득 공제에 이용하기를 원한다. 헌금이 적게 들어오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다음 설교의 주제는 헌금을 많이 드리면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로 바뀐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이 우선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더욱 우리를 우선시하게 된다. 가만히 서서 오늘날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봐야 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에 가득찬 소욕을 버려야 한다.
2007/09/08 10:33 2007/09/08 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