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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울만한 이슈가 별로 없어서인지 - 개인적으로는 큰 경사가 있었지만 - , 아니면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근래에 매스컴을 통해 접하게 되는 부고가 참 많은 것 같다. 대체로 부재가 아쉬운 사람들이라 더 여운이 오래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손으로 꼽아보아봤자 생각나는 건 장진영, 김대중 전대통령, 노무현 전대통령, 마이클 잭슨, 여운계, 최진실, 장자연 정도이니 매일 알려지지 않고 세상을 등지는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은 수이지만...)

굳이 악플러의 예까지 들지 않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때마다 사람의 잔인함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익히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을수는 없겠지만, 도로에서 차에 치여죽은 비둘기에 대한 것보다 더 가벼운 감정으로 - 그보다는 덜한 혐오감을 담아서 - 시간때우기용 가쉽거리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볼때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싶어 마음 한켠이 쓰리다. (물론, 고인을 기리며 안타까워하는 블로거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늘쌍 마주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인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모습들을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은 그리 들지 않는다. 적어도 죽음은, 그렇게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지 1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부재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수도 있지만, 뱃속에 돌을 가득 넣고 뒤뚱거리는 빨간모자의 늑대처럼, 마음 일부의 무거움은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떠날때마다 그 마음은 더 커지고, 더 무거워진다.

하도 많이 죽어 이젠 아무렇지도 않고, 별 감흥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연예인이나 공인들의 부고에까지 일일이 신경쓰고 애도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죽음을 내 - 이야기거리가 생김에 대한 - 즐거움으로 만들면 안될 것 같다. 이름이 알려진 누구이든, 죽음의 사실조차 알 수 없는 어떤 이든,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죽음도 엄숙한 것이니까.


그냥, 재밌다는 듯 이야기하며, 평소에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사생활을 떠드는 이들에 대해 가벼운 화가 치밀었을 뿐이다. 차라리 업무 이야기를 하자.
2009/09/02 17:52 2009/09/02 17:52
죽음을 처음 경험하였을 때, 그 이를 떠나보내는 매장埋葬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겪는 일들 중에서 가장 하기 싫고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같은 날, 같은 매장지에서 만난 어느 소녀의 통곡소리가 귀에서 지워지지 않고, 아버지의 관이 모습을 감추는 모습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고통의 분량이 삶의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매장埋葬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라면, 화장火葬은 끝장이라는 느낌이었다. 매장이 강을 건너가는 임을 보고 있는 것이라면, 화장은 지상 5000m 상공에서 - 나는 내려가지 못하는데 - 떨어지는 이를 보고 있는 것이랄까. 그야말로 끝.
더군다나 영화에서 보듯 노을지는 산 위에서 뼛가루를 폴폴 날리는 아름다운 광경은 영화 속 장면일 뿐, 도심지에서 그런 짓을 하다간 비싼 벌금만 낼 뿐이다.
낭만도 없고, 추억도 없고, 희망도 없는, 끝.
인생이 허망해진다.


일견 사람의 살아감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경험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계속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사람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는 회수가 많아진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노년의 삶은 서글픈가보다.
2006/12/01 14:48 2006/12/01 14:48

좋은 죽음

사색의 꿈 2006/12/01 14:24
사람이 죽는 것에는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없다. 태어났으니 죽는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말하듯,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닌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삶의 일부 중 하나인 밥을 먹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지만 죽음에는 그러한 취향이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하고, 대부분의 마음 속에는 그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게 벽에 똥칠을 하더라도 살아있기를 원한다. 모두가 기피하는 것에 좋고 좋지 않고가 있을리 만무하다.

호상好喪[각주]복을 많이 누리며 오래 산 사람이 죽은 상사[/각주]이라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가 없는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없는 작업 중의 하나이다. 죽은 이와의 관계가 중심에서 변두리로 갈수록 이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인사치레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는 조작에 불과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나오지 않으려는 슬픔을 억지로 끌어내다 지쳐 내뱉는 탄식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인사치레와 다른 점은 슬픔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이를 노엽게 할 수 있다는 것.


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겠지만, 지난 상喪때 수십번을 들었던 바람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나이든 이가 평안하게 맞이하는 죽음이라 해도, 그 이도 남겨진 이도 원하지 않던 죽음이니 잘되었단듯이 그렇게 위로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으니.
2006/12/01 14:24 2006/12/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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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망가졌을때, 솔직히 옳다구나 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시드군과 태일군의 새로 산 카메라를 보며, 그저 똑딱이지만서도 뽐뿌받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겨우 3년여밖에 되지 않은 카메라를 - 디지털 시대의 시간은 아날로그의 그것과는 같지 않지만 - 낼름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카메라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 약간은 들떴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재정난에 시달리는 요즘이지만, 있을 건 있어야겠기에 휴가가 끝난 그제와 어제, 종일 카메라 사이트를 보고 다녔다. 그러면서 몇개의 기종에서 맘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제의 퇴근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카메라가 멀쩡할때는 잘 들고다니지도, 자주 찍지도 않더니만 고장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러고 있나. 카메라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 필요하긴 하다, 이레를 위해서도... - 무언가를 산다는 것에 더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마다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시절이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잠시 없는 것에 불편을 느낄 정도이겠는가. 그저 불분명한 소유에 대한 욕구일 따름이겠지.

오늘 이레에 대한 유아보험을 보다가 학자금 특약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달에 몇천원에 불과한데, 1세부터 해마다 일정 금액이 나오는 게 아닌가. 보험회사는 뭘로 장사하나, 준다면 고맙게 받지요,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작은 글씨로 뭐라뭐라 쓰여있는 것을 보았더니,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이 죽거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어떤 블로거께서 지난 주말에 고인이 되셨다는 글을 보고, 또 그 블로그에도 가보았다. 사고를 당하시기 불과 며칠전에 올린 글에서 저장해놓은 사진이 지워질까 걱정하는 마음을 보았다.


내가 죽으면 우리 마늘님이나 이레, 가족들에게 얼마정도 주고 갈 수 있지만, 난 무엇을 가져가나. 먼 훗날 회상할 수 있도록 사진을 많이 남겨놓기도 하고, 글을 남겨놓기도 하고,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 이러저러한 흔적들을 남겨놓지만, 결국 그것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난 이리도 소유에 목을 맬까. 내가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덧. 그래도 카메라는 살거다.
2006/08/23 12:39 2006/08/23 12:39
주말, 찌는 더움을 이기지 못해 옷을 거의 다 벗고 얼린 물통을 수건으로 감싸 안고 뒹굴거리며 채널을 돌리다가 ch.CGV에서 A.I.를 보게 되었다. 몇번 DVD를 사려고 하다가 사지 못하고 내용도 기억 속에서 스러져갈 즈음이었는데, 마침 마늘님도 못봤다고 하니 얼씨구나 낙찰~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A.I.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유모 로봇이 녹아내리면서도 데이빗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장면, 데이빗이 또 다른 데이빗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장면, 조와 데이빗이 헤어지는 장면, 그리고 데이빗이 파랑 요정 앞에서 계속 소원을 되뇌이는 장면 - 에서의 곰인형 - 등이다. 이 중에서 마지막에 언급한 장면은 보고 생각할때마다 오싹하다.

요즘 보게 된 몇 작품에서 동일하게 생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무한의 생명, 혹은 아주 긴 시간 동안의 고독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마빈은 아서 덴트 등과 만나게 되면서 수천억년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시공간을 초월하며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그 오랜 시간동안 이 우울증 로봇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카우보이 비밥에서 늙지 않는 소년
1은 어떠한 마음으로 그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며, 버려진 인공위성2은 고독을 어떻게 버텨내었을까. 반지의 제왕에서의 엘프들은 에루3도 아니고 발라4도 아니면서 무한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신을 자기와 같은 동료들 덕분에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대부분의 누구에게나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겠지만, 죽음이 없다면 이 지루한 세상 속에서 과연 제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생에 종착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죽여도 죽지않는 만지와 같다면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가치가 있을까. 죽음이란 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불로불사는 공짜 정도가 아니라 덤으로 줘도 싫을 것 같다.


  1. 카우보이 비밥 TV Series #6 Sympathy for the Devil [Back]
  2. 카우보이 비밥 TV Series #9 Jamming with Edward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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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이누 중 지도자급, 반지의 제왕에서 회색항구 너머에 있는 발리노르에 거주. 발라 중 하나인 멜코르에 의해 사우론이 창조됨 [Back]
2006/08/07 17:25 2006/08/07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