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10년 02월 02일 허니와 클로버, 청춘이 최고다!
  2. 2010년 02월 02일 스트레인저 - 무황인담
  3. 2010년 01월 07일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4. 2010년 01월 04일 밀리언 달러 베이비, 단 하나의 소중한 비밀...?
  5. 2009년 12월 31일 P.S. I Love You...
  6. 2009년 12월 28일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7. 2009년 12월 23일 잠수종과 나비
  8. 2009년 12월 19일 아바타(Avatar), 넋을 잃다 (3)
  9. 2009년 06월 29일 트랜스포머2를 보다
  10. 2008년 09월 18일 21세기의 20세기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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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아오이 유우


아오이 유우로 시작해서 아오이 유우로 끝나는, 아오이 유우를 위한, 아오이 유우에 의한, 아오이 유우의 영화. 나는 단연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하구미가 웃는 모습이 한번 더 나오기를, 계속 바라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눈을 집중해도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세상, 이룰 수 없었던 꿈과 동경. 이 녀석들의 눈으로 본다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보이는걸까". 극 중 다케모토가 독백한 이 말은 가슴 깊은 공감을 남겼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내게 시종일관 불편함을 주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하구미의 그림이 무엇이 대단한건지, 모리타의 조각은 왜 훌륭한건지를 알 수 없었다. 공대형 기계식 논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나에게 미술의 추상성은 꽉 끼인 옷처럼 불편하기만 했다. 도대체 저런 그림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들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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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하고,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것이 청춘. 모리타의 말처럼,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성장해가는 청춘이, 나 역시 부럽다. 하지만 내게 그 시간이 다시 온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벚꽃을 좋아하지만, 꽃이 지고 나면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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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최고다


청춘이든 인생이든, 어떻게든 굴러간다. 하지만 현실이 힘들다고 외면하거나 피해간다면 그토록 눈부셨던 그 날의 바다는 한낱 추억이 되버리고, 현실의 외로운 바다가 가슴을 후려치게 될 뿐이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도망쳐서는 안되는 초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꿀과 클로버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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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 ハチミツとクローバー / Honey and Clover


02 2, 2010 15:42 02 2, 20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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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시, 코타로, 그리고 토비마루


고등학교 시절, 한창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을 때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었다. "수병위인풍첩"이라 부르던, 요즘은 "무사 쥬베이"로 알려진 하드코어 작품이었는데,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보지 못하는 나도 그 사실적인 묘사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고 표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은 많이 나왔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레퍼런스에 해당하는 존재로 남아있다.(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비교 대상 자체가 드물긴 하다)

그런데 새로운 레퍼런스를 발견한 것 같다. 비단 사실적인 액션신만이 아니라, "스트레인저 - 무황인담"은 전체적인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바탕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102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눈을 돌릴 새를 주지 않아서 더욱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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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에 비해 매우 유용한 옥 아이템


"스트레인저 - 무황인담"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일본의 전국 시대, 명나라 황제는 불로불사의 선약을 찾아 일본에 사신을 보내고, 사신은 백년에 한번 태어나는 아이의 피를 이용해 선약을 만들고자 한다. 그 소용돌이 가운데에 있는 소년, 코타로는 떠나왔던 절로 돌아가기 위해 우연히 만난 "나나시"의 도움을 받지만, 아이를 차지하려는 명나라 자객들에게 붙들리고 만다. "나나시"는 "코타로"를 구하기 위해 성으로 향하고, 명나라에 고용된 금발 벽안의 "라로우"와 맞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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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한마리로 시작한 인연


액션 영화의 스토리가 지나치게 깊고 장황하면 오히려 집중을 흐트러트리게 된다. 관객이 스토리를 생각하며 보게 되면 액션신에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액션에 집중하게 되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되버리고 만다. "무황인담"은 복잡한 스토리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보여주기에 치중한 나머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가벼운 이야기를 말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볼거리에 빠져 이야기를 놓치지 않도록 잘 조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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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맘에 들었던 장면 중 하나


"무황인담"은 굉장히 멋진 화면을 보여준다. 사실적이고도 역동적인 액션신은 영화 내에서 꽤 자주 나오는데, 어느 한 장면도 모자람이 없다. 라스트 액션을 위해 힘을 아껴둔다던가, 대강 넘어가지 않고 모든 액션이 고루 멋지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을 차례로 모두 죽여가며 마지막 두 무사의 대결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멋진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영화같은 장면과 구도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역시 본즈, 라는 감탄사를 내고야 말게 하는 그들의 열정과 안도 마사히로의 놀라운 연출에 찬사를 보낸다. 아직 보지 못했다면,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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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 무황인담 / ストレンヂア -無皇刃譚 / Sword of the Stranger


02 2, 2010 15:01 02 2, 20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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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 아니 우리나라의 문화의 차이를 대자면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족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근대화를 이룬 지금은 꽤나 핵가족화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과년한 자녀와 혼인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사별하지 않은 부모를 모시는 일에 - 모시지 않더라도 - 마음을 쓰는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 비춰지는 가족에 대한 모습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사뭇 다르다. 부모의 인생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모 역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부모의 새로운 인생이나 일탈에 대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거나 그런 사건들에 의한 자신의 위치와 상황 변화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식이라면, 다른 나라는 부모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맘마미야" 만 보더라도 엄마의 일상에 돌맹이를 던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바위덩어리를 던지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부모의 일상의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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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지만, 번화한 도시는 그들에겐 낯선 곳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이야기는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 그리고 그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서로에 대한 사랑이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일상적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버킷리스트"처럼 죽기 전에 해보지 못한 특별한 일들을 해보려 마음먹는 것은 아니다.

트루디는 남편의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의사로부터 여행이라도 떠나보라는 말을 듣지만, 루디는 고지식하고 모험과 일탈을 모르는 남자라는 것을 알기에 여행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트루디는 루디와 함께 베를린의 아들 내외와 딸을 보러 모처럼의 외출을 하고, 트루디의 청으로 바다를 보러 간다. 그런데 그 바다에서 트루디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루디는 아내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의 흔적을 더듬다가 후지산에 대한 아내의 열망을 발견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막내 칼에게 가게 된 루디는 한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유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후지산을 보러 간다. 그리고 며칠동안 구름에 가려져 있던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낸 어느 날 아침, 루디는 호숫가에서 부토를 춤으로 아내와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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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땅이, 아내는 왜 그리 좋았을까


우리는 늘 시간이 많은 것처럼 살고 있다. 우리에게 어떤 사고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어떤 병에라도 걸릴 수 있다는 것 - 그리고 크리스쳔이라면 그 날이 바로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 - 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많은 일을 미뤄놓고 살아간다, 특히 가족을 위한 일들을. 그러나 우리가 늙거나 젊거나, 건강하거나 허약하거나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을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동안 가족과 꿈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다면 - 만족할만큼 할 수야 없지만 - 그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사람들은 그를 마음에 묻는다. 결코 잊을수도 없고 슬픔과 후회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배우자를 떠나보낸 사람과 부모를 떠나보낸 자녀의 마음이 같을 수 있을까. 자녀는 마음에 묻고 때때로 추억하고 슬퍼하고 후회하지만, 배우자를 떠나보낸 이는, 아마도,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에, 모든 삶 속에서 여전히 그 마음이 함께인데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아픔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가능하다면 알고 싶지도 않다).

루디와 트루디는 베를린의 자녀들을 만나러 가지만, 그들은 오랫만에 찾아온 부모를 부담스러워 한다. 겨우 하루의 시간조차도 힘들어하고 어서 돌아가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트루디가 죽은 후 일본을 찾은 루디를, 막내 아들 칼 역시 힘들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노부에게 손을 내민 것은 타인이었다.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루디와 트루디에게 베를린 관광을 시켜주고, 트루디의 꿈을 이해한 것도, 낯선 일본 거리를 헤매는 루디에게 부토를 가르쳐주고 후지산까지 함께가주는 것도 모두 낯선 이들이다. 부모에게 자녀들은 여전히 그들이 마지막에 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찾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자녀들은 부모가 그저 그림자로, 사진 속의 추억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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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가족은 늘 화목하지만...


한가지 더 씁쓸한 것은, 트루디가 죽고 난 후에, 자녀들이 하는 말이었다. 머나먼 독일에서도, 홀로 남은 아버지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엄마는 하필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갔느냐는 말에서, 몇 안되는 전세계 공통적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가정에서도 알게 모르게 고립되어가는 아버지들의 현실이,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슬프게 다가온다.

갑작스레 루디를 떠나보낸 트루디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짧았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리고 일본을 그토록 바라던 아내, 가족을 위해 부토 댄서라는 자신의 꿈을 접었던 아내에 대한 후회에 사로잡힌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서 남겨주는 것은, 아마 대체로 후회와 미안함일 것이다. 루디는 그의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에게 못해준 것을 해주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고, 아내의 옷을 입고 동경 곳곳을 돌아다닌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은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록 "P.S. I Love You"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 글에서 말했듯 사랑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니까. 혹은, 남겨진 시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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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舞蹈, 그것을 통해 그들은 마지막 숨을 몰아쉰다


덧. 이 영화는 휴먼드라마적인 로맨스이지만,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미성년자와는 절대 같이 보지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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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 Kirschblüten - Hanami


01 7, 2010 18:18 01 7, 20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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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그 이름은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유명한 이름이다. 석양의 무법자 등으로 유명한 서부극의 대표적인 배우이고, 뛰어난 감독이자 제작자인, 어느덧 81세의 명배우이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그가 출연하거나 제작, 혹은 감독한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다지 영화광도 아니고, 고전을 찾아보는 수고를 애써 하는 편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지만, 최근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걸 감안하면,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해야 더 맞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복싱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한 때, 혹은 지금도 남자들이 열광하는 K-1 등의 이종격투기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쿡 인터넷존에서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슷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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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는 매기를 위해 고집을 버리지만, 매기는 그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


프랭키는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는 조심스러운 트레이너이다. 그는 선수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경기나 타이틀전에 대해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체육관을 맡은 스크랩이 눈을 다쳐 선수 생명을 잃은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체육관에 매기가 들어온다. 여자 복서를 맡고 싶지 않았던 프랭키는 처음에는 돈 때문에 그녀를 받아들이고, 다음에는 그녀의 열정과 솔직함에 받아들이며, 다음에는 그녀의 꿈에 받아들인다. 그렇게 매기는 선수가 되고, 이기고, 마침내 타이틀전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반칙적 경기로 유명한 챔피언과의 타이틀전에서 척추 손상을 입고, 목 아래가 마비된다. 그런 그녀를 프랭키는 헌신을 다해 돌보지만, 매기는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려 하고 프랭키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영화는 복싱영화답지 않게 역동적이지 않다. 매기는 매 경기마다 1회 KO승을 거두는 유능한 선수이지만, 그가 받는 화려한 찬사와 명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고생스러운 훈련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열세인 상황에서 - 흔히 영웅주의적 이야기로 - 극적으로 승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곁에 없는 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프랭키와 가족과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매기, 그리고 꿈을 잃고 그 꿈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스크랩의 삶을 덤덤한 스크랩의 목소리로 들려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깊이 몰입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짙은 감동을 꺼내오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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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 Canon EOS-1D Mark II | Shutter Priority | Multi-Segment | 1/160sec | F4 | 0EV | 50mm | ISO-400 | No Flash

MoCuishle


프랭키에게 매기는 단순히 가능성 있는 선수가 아니라 그의 딸이었다. 그리고 매기에게도 프랭키는 매니저일뿐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아버지였다. 되돌아오는 딸에게의 편지와 돈밖에 모르는 매기의 가족은 더욱 이들을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로, 모쿠슈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매기는 더 천방지축일 수 있었고, 프랭키는 그녀를 받아주고 마지막까지 돌보아줄 수 있었으리라.

사람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 언제일까. 단 하나뿐인 꿈을 향해 달렸고, 성취했는데, 그 꿈이 몰락해가거나 자신이 그 이룬 꿈에 비해 보잘것없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진정한 꿈이란, 꿈을 이루고 그 꿈을 넘어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더 높은 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테니까.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도, 힐러리 스웽크의 팔짝팔짝 뛰는 연기도 좋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저음 목소리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런 목소리로 멜로라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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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베이비 / Million Dollar Baby


01 4, 2010 15:43 01 4, 20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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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I Love You...

from 누림의 꿈 12 31, 2009 09:42
아직 사랑해야할 시간도 열정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 대상을 갑작스레 잃어버린다면, 바로 그 사랑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혹은 그 사랑을 다른 대상에게로 넘길 수 있을까. 사랑을 멈추고 다시 사랑하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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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법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P.S. I Love You" 는 사랑을 만들어가는 연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사랑을 빼앗긴 연인에 대한 영화이다. 제리와 홀리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평범한 부부이다. 아기를 갖기에 적당하지 않은 생활에 고민하고 싸우며 서로를 오해하지만, 서로에 대한 아직도 뜨거운 사랑으로 금새 풀어지고 더욱 사랑하는, 금술좋은 부부였다. 하지만 제리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리는 그의 빈자리를 견뎌내지 못하는데, 홀리의 30번째 생일에 제리에게서 케익과 녹음된 편지가 도착한다. 계속 날아드는 제리의 편지와 계획들 속에서 홀리는 그를 느끼고 그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안정을 찾아간다. 편지의 말미에 적은 P.S. 처럼 사후에도 계속되는 제리의 삶의 추신은 홀리에게 또 다른 사랑을 알려준다.

뜨겁고 깊게 사랑하면 열정이 좀 더 빨리 사그러질까. 늘 한결같은 사랑의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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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몸이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워야 하지만...


사랑은 단순하지만, 다양하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금방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사랑인지는 정의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서로 사랑하는 두 연인의 사랑의 모습조차도 다르다. 아니,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도 여러가지이니 정말 많은 사랑이 있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모두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단순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사랑들은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사랑하며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배우고 이해하고 깨달으며 각자의 사랑이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때 남아있는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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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는데 사랑이 여전한 것은 고통뿐일지도 모르겠다 (오른쪽 아래의 상자가... 유골함 ;;; )


더 어렸을때, 사랑을 잘 몰랐을때, 나는 남아있는 사랑을 추억과 함께 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적어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했던 사람에 대한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면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억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었고, 사랑을 품고만 있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이미) 늦어버렸다.

영화는 소설적, 혹은 영화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다. 사실 현실에서의 변수는 너무 많아서 실제로 저런 시도를 해보아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바라기는 하겠지만, 내 배우자가 그렇게 슬퍼하고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으며, 편지에 적힌대로 따라오는 것도 보장하지 못한다. 영화이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실제로 사후에 편지가 계속 온다면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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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힘들다면 주위의 도움도 중요하다 (프렌즈의 리사 쿠드로의 모습도 보인다)


한국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거의 반드시 떠올리게 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박신양, 최진실 주연의 "편지" 이다. "P.S. I Love You" 처럼 뇌종양으로 배우자를 떠나보낸 여자에게 남편의 편지가 배달되고, 삶의 의욕을 잃었던 여자가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비슷한 스토리로 10여년 전에 대한민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바로 그 영화이다. 하지만 최루성 멜로의 최고 중 하나답게 "편지"를 생각하면 우선 슬퍼지고 보는데, "P.S. I Love You"는 로맨틱 코미디답게 경쾌하다. 사랑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가 아닌가 싶은데, 우리에게 사랑은 애틋하고 절절한 감성이라면, 유럽인들에게 사랑은 일상적이고 즐거움으로 느껴지기 때문인 듯 하다. 다행히도 "P.S. I Love You"는 제리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만한 이야기를 분위기가 처지지 않도록 잘 풀어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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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가 변해도 사랑은 여전하다 (엄마 역의 케시 베이츠, 그녀가 미저리의 여주인공이라는 것!!)


갑작스레 떠나는 자신의 빈자리의 충격에서 홀리를 보호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매듭지으며 그녀로 하여금 남은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여러 일을 계획하며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켜가는 제리의 모습이 - 비록 영화 속에서 직접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다웠고, 제리에 대한 남은 사랑을 못견뎌하다 그의 편지들을 통해 그 사랑을 완성시키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으려 하는 홀리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은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기분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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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이러브유 / P.S. I Love You


12 31, 2009 09:42 12 31, 20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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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의 흥행과 발전된 CG 기술의 바람을 타고 수많은 판타지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 중에서 일부만 개봉이 되고 있다(아더와 미니모어의 경우처럼 뒤늦게 개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위의 영화 이외에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원작가들의 인연에 의해 반지의 제왕을 엮어 홍보했던 나니아 연대기의 경우에도 큰 재미를 보지는 못한 듯 하고, 오히려 문 프린세스처럼 듣보잡 계열의 영화가 더 많은 편이다. 물론 매니아들에게야 그렇지 않겠지만.

나 역시 판타지를 좋아하지만 편식을 하는 편이라 그다지 많은 영화를 접하지는 못했는데, 그간 판타지같지 않은 판타지라는 얘기를 들었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뒤늦게 보게 되었다. 결과는 역시 판타지를 본 느낌이 아니라 흡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작전명 발키리"를 본듯한 느낌이다. 15세 관람가라고는 하지만, 타겟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

때는 1940년대, 스페인 내전 후 잔당을 소탕하고 있는 부대에 오필리아가 그녀의 어머니와 도착한다. 새아버지가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임신중인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데려오기 때문인데, 부대로 가는 도중 오필리아는 요정을 만난(다고 생각한)다. 군대의 환경과 새아버지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필리아는 어느 밤, 요정을 따라 판을 만나게 되고 판에게서 자신이 요정 세계의 공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요정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몇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도.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판의 지시에 따라 문제들을 해결하고 마침내 판의 앞에 선 오필리아이지만, 동생의 피가 필요하다는 판의 말에 그녀는 요정 세계를 포기하는데...

아마도 배급사의 홍보도 위와 비슷했을 것이라 본다. 해리포터와 비슷한 가정(사회)부적응 소년소녀의 현실 탈출 판타지로 가장해서 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하지 않았을까. 해리포터 시리즈조차도 점점 무거워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즐겁게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영화를 보러 간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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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모습을 한 판. 그러나 악마와 더 흡사하지 않은가


이 영화는 동화가 가혹한 현실에서 위안이 될 수 없다고 계속해서 말해준다. 오필리아는 요정을 보고 마법을 보고 다른 세계를 보지만, 어머니는, 스파이는, 새아버지인 대위는 마법따윈 없다고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필리아는 판의 지시를 - 비록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 충실하게 수행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보여주는 판의 세계는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필리아의 상상일까.

보통 판타지는 대상이 어떠하던간에 현실이 가혹할수록 상상의 세계는 따뜻하다. 상상의 세계조차 현실과 다르면 무엇하러 상상할까. 언제나 상상의 세계는 결국 사우론이 패하고, 해리가 아니라 볼드모트가 죽고, 아스란이 승리하는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판의 미로"는 현실만큼 판의 세계도 어둡다. 우리편인지 저쪽편 괴물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판의 외모 뿐만이 아니라 그의 태도 또한 우리로 하여금 과연 오필리아가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제대로 된 이야기인지 의심하게 하고, 오필리아가 혹시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닌가 고민하게 하고, 영화의 장르를 잘못 안 것은 아닌지 확인하게 한다. 결국 해피엔딩일거야 라는 기대조차 품을 수 없을만큼 밀어붙힌다.

결국 오필리아가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의 심성 덕분에 요정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지만, 영화는 요정 세계에서의 오필리아와 함께, 현실에서 피를 흘리는 오필리아도 보여준다. 사후 세계에서의, 혹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서 현실에서의 상황을 견뎌내고 주어진 임무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영혼의 세계는 허상이며 결국 현실 도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의 선택을 관객에게 맡기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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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Pan's Labyrinth / El laberinto del fauno


12 28, 2009 17:27 12 28, 20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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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from 누림의 꿈 12 23, 20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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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장 도미니크 보비의 유명한 작품으로 "잠수복과 나비"가 있다. 유명 패션잡지인 엘르(Elle)의 편집장으로 잘나가던 그는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쓰러졌다가 의식을 회복했지만, 그 의식이 왼쪽 눈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는 몸에 갇혀버린 록트-인-신드롬(Locked-in Syndrome)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는 왼쪽 눈의 깜빡임만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15개월여에 걸쳐 "잠수복과 나비"를 쓰고 갇혀버린 몸을 떠났다.

그리고 이 장-도의 일화와 책을 영화로 만든 것이 "잠수종과 나비"이다. 줄리앙 슈나벨 감독은 이 영화를 철저하게 장-도의 시각에서 접근했다. 카메라가 장-도의 왼쪽 눈이 되어 그의 시점에서 그가 바라보고 느꼈던 세상을 보여주며, 그 왼쪽 눈 안의 의식이 얼마나 자유로웠는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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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변인들은 저 알파벳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을까



난 "잠수복과 나비"를 읽어본 적은 없다. 다만 익히 알려져있는 그 책에 대한 일화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듣고 볼 수 있지만,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알파벳 한글자씩을 눈으로 알려주고, 그것을 단어로, 또 문장으로, 책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일까. 상상할 수 없었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칭 폐쇄공포증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데, 난 갇혀있는 느낌을 굉장히 싫어한다. 특이하게 폐쇄적인 공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던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던가 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고작 4주의 훈련소 입소 기간 중에 약 2주를 창고로 사용하던 내무실에서 지냈는데, 일반 내무실이 아니라 침낭에서 자야 했다. 정말로, 당시 내게 가장 좋았던 것은 불침번을 서는 일이었다. 침낭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참아내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지금도 이따금 지하철 좌석에서 옆 사람들에 의해 꽉 끼어 팔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흡사 공황장애를 일으킬만큼의 공포감이 밀려오곤 한다.

그런데다가 글을 읽을 때 감정이입도 쉽게 되는 내가 어떻게 그런 글을 읽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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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이 보는 것보다 그의 마음은 더 멀리 날아갔으리라


그러다가 책보다 먼저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알려진 그의 이야기나 작품의 특성상 무겁고 슬픈 영화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영화는 담담하다. 장-도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좌절과 후회와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찬 것이 아니라 그의 상상과 유머, 해학을 보여준다. 병의 특성상 나레이션은 관객이 아닌 자신에게 향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감정적인 이야기도 감정이 극도로 치닫는 형식이 아닌 일관된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때때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동일한 병을 겪고 있지만, 보다 발전된 기술의 힘을 빌려 네트워크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마르탱과 지극히 단순한 알파벳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장-도. 신체에 묶이지 않은 그들의 정신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자유로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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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의 아버지는 각각 몸과 건물에 갇혀있다


장-도는 발병되기 전에 거동할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 효도를 했다고 회상한다. 그의 아버지는 병에 걸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울지 말라는 장-도의 전언에 아버지는 어떻게 아들이 아픈데 울지 않을 수 있냐고 하며, 그의 생일에 어린 시절 사진을 깜짝 선물이라며 보낸다. 기억은 누구에게나 위안이 되고 후회가 되며 기념이 된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많은 기억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비록 많은 부분은 잊혀지고 떠오르지 않겠지만, 남은 기억들은 언젠가 당신을 울리고 웃게 할테니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도와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고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우리, 누가 더 자유로울까. 갇히고 억압받고 기회와 공간을 빼앗긴다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일까. 좌절과 실패를 겪은 후에 무기력하게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 보기에 정상이 아니라고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욕망이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가.

영화는 밝은 분위기에서 매력적인 마티유 아말렉의 목소리로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어느 순간 영화를 보며 어두운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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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언어치료사의 힘이 가장 컸다


12 23, 2009 17:24 12 23, 20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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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내게는 도전이다. 밤낮을 아이들에 매달려 있느라 피곤에 지친 아내를 끌고, 마찬가지로 아이들에 치여 피곤한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극장에 가는 일은 생각도 어렵고 실천은 하늘의 별 따기만하다. 그래서 이따금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에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하고, 미친 척 눈 딱 감고 아내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어쨌든 그러해도 일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많아야 서너번을 넘지 않으니, 영상 문화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다. 포기하는게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다.


신세한탄은 그만두고, 여차저차해서 어제 아바타를 보았다. 블로고스피어에 가득한 찬사를 보고 있자니 보고싶은 열망이 점점 커져, 때마침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영화 관람으로 변경하고, 아쉽게도 인천엔 아이맥스관이 없어서 인천 CGV의 디지털 3D 상영관으로 달려갔다. 셋 모두 3D 영화는 처음이라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어색한 안경을 쓰고 광고를 보며 졸고 있자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영화 상영시의 광고는 좀 줄여야 한다고 본다. 10시 40분에 시작한 162분짜리 영화를 보고 엔딩 크래딧이 끝나기 전에 나오니 1시 30분이라는 것은 적어도 시작시간을 넘긴 광고가 10분 이상 되었다는 얘기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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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의 평은 말할 것이 많지 않다. 최고, 이 한마디면 족하다. 커다란 극장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완벽한 CG 그래픽은 그 외의 모든 문제를 덮을 수 있을 정도이고, 입체적인 3D 영상은 왜 제임스 카메론이 북미 지역의 극장에 3D 영사기 설치를 그토록 부르짖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거기에 그가 보여주는 판도라의 모습은 우주 어딘가에 정말 존재할 것 같이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판타지와 그래픽에 열광하는 그대여, 지금 당장 보러 가길 권한다.

어느 블로거가 한 이야기처럼 아바타를 보는 와우저들은 마치 게임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가질 수 있다. 아바타를 통해 나비(Na'vi)족이 되어 그들의 부족에 들어간 제이크 설리가 나비족의 전사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MMORPG의 레벨 업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천골마와 느린 탈것을 거쳐 마침내 빠른 탈것(?)을 탄 토루크 막토가 되었을때는 마치 내 캐릭터가 탄 것처럼 감동이 밀려왔다. ^^; 나비족이 힘을 합쳐 인간을 공격하기로 하고 함성을 내지를때는 자칫, For the Horde라는 말이 나올 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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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래픽에 놀라지 않는다면 자칫 어떤 부분들에서는 영화가 밋밋하다고 느껴질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스토리의 개연성에 매달려 그래픽 감상을 저해할만한 요소를 배재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게 평가할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래픽만을 보는 것은 아닌 만큼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강을 정화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킨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현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연에게 주는 것이 회복과 조화인지 파괴인지를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픽에 있어서도 영화 자체가 아이맥스 3D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하니 가급적 아이맥스 3D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3D 영화를 처음봐서인지 처음에 익숙해지는데에 시간이 걸렸고, 디지털 3D의 방식 때문인지, 아니면 시력이 떨어져서인지 초점이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는데,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막이 입체감있게, 그리고 자리를 바꿔 뜨는 것은 참 좋았다. 적어도 이 영화만큼은 후에 1080p 블루레이 립버전을 다운받아 보더라도 결코 좋은 화질로 봤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2009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개봉한 이 영화는 단숨에 관객들의 머리에서 2009년의 다른 영화들을 지워버리고 최고의 영화로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12 19, 2009 13:22 12 19, 200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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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드 2009年 12月 21日 14時 14分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함 봐줘야 겠구만.... (아마도 다운.. 쿨럭..)

    • SeNSe 2009年 12月 21日 15時 33分  address  modify / delete

      이건 다운받아 보는건 보는 의미가 없삼~
      말하자면, 트랜스포머2 720p 블루레이 립을 다운받아 보는게 아바타 캠버전을 다운받아보는 정도랄까~

  2. 김종국 2009年 12月 29日 04時 40分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바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고

    나비가 되고 싶고

    모두를 사랑해야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몽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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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2를 보다

from 누림의 꿈 06 29, 20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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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일년간을 못하던 인터넷을 요즘은 매일같이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정보 물고기들에게 어택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마늘님이 힘드신데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2 : 폐자의 역습을 보러 갔다. 개봉 첫날, 그리고 이튿날 대부분의 평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별 생각이 없어서였는지 나름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처음으로 디지털관에서 보는 영화이기도 했고.

벌써 노안이 생긴건지, 트랜스포머 1편을 볼때부터 CG가 조금 불편했다. 소리는 요란하지만, 도무지 원리를 알 수 없는 - 저 부품은 어디서 생긴거고, 저 부분은 어디로 간거야 따위의 - 정신없는 변신 장면이 눈에 익지를 않았다. 그 변신 장면을 실사(?)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들이야 그런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겠지만, 나같이 트랜스포머가 무슨 듣보잡인 경우에는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을까. 물론 CG야 화려하지만. (1편때 트럭이 로봇으로 변신하기까지 6개월의 과정을 거쳤다니, 디자이너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어쩌면 이것은 이 영화에 국한되는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스크린으로 옮겨진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 - 과 실망 - 을 느낄 수 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베스트로 손꼽힐만하겠지. (물론 배급사와 극장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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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계는 어디길래??

그래도 이왕이면 스토리에도 좀 신경써줬었으면 좋았을텐데. 디워가 (물론 엉성한 CG도 있었지만) 스토리로 인해 무수한 욕을 얻어먹고 흥행에도 실패했던 것처럼, 원작의 두터운 팬층과 헐리우드의 자본력, 그리고 메간 폭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도 어쩌면 다른 길을 걷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1편의 성공으로 마이클 베이 감독이 긴장이 풀린 듯, 느닷없이 바뀌는 신과 배경 지식이 없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 - 배경 지식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 , 조금 지루한 추격신 등 영화의 진행이 들쑥날쑥한 면을 보이고 있는데, 마치 난 이런 화려한 장면을 만들 수 있어, CG나 봐,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디셉티콘 진영의 경우, 난 대부분의 로봇을 분간할 수 없었다. 색이라도 칠해져있는 오토봇 진영과는 달리, 무채색의 디셉티콘은 얘는 여기 있는데 쟤는 어디서 나온거야, 싶을 정도로 구분이 잘 안되었다(간혹 오토봇과 디셉티콘도 헷갈렸다). 캐릭터가 더 많아졌다고 하는데, 오토봇의 몇몇과 디셉티콘의 폴른, 그리고 먼지먹는 하마 이외에는 뭐가 더 생긴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설마 그게 다??).

CG는 무척 화려하다. 디지털관에서 봐서인지 화면도 깨끗하고, 적절한 음향 효과도 영화를 살려주었다. 요즘의 판타지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영상 효과만을 본다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만한 영화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간에 2시간 30여분을 들여 보았던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러닝 타임은 조금 더 줄여도 되지 않았을까?) 스타트랙 더 비기닝에 한 표를 더 주고 싶다.
06 29, 2009 09:26 06 29, 20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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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그 시절에 꿈꾸던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까...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비웃을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를 이어 소소하게(?) 나니아 연대기들이 영화화되고, 베오울프도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터치나 러프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다크나이트는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여러가지 도전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내미는 가운데 역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만화가 영화의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왔다.

일본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3부작으로 만들었다는 영화의 결과는... 글쎄. 아직 3부작 중 제 1장만 공개된 상태이고, 내용상으로도 이제 겨우 서막이 올랐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아직 결과를 내기에는 섣부를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점수를 후하게 주긴 힘들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트릭에 푹 빠져있었다. 아베 히로시와 나카마 유키에의 콤비도 즐거웠지만, 적당한 긴장감과 유머를 잘 섞어낸 감독의 연출도 드라마를 계속 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세 시즌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그 성공 때문일까. 츠츠미 유키히토는 그 자신이 만들어낸 스타일에 갇힌 듯 하다. 20세기 소년을 보는 내내 트릭을 보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그 특유의 연출과 추리문학풍의 만화가 어쩌면 잘 어울릴수도 있었겠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서는 잘 비벼지지 않은 비빔밥처럼 나물과 밥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만화의 내용을 그대로 따오고 있다. 순간순간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만화를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어린 시절 동키가 뛰어내릴 때라던가, 피의 그믐날 켄지의 노래를 듣던 청년들, 그리고 로봇의 조종석을 향하는 켄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아니면 연기력 때문일까. 분명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지화상인듯한 신Scene들이 보이는 것은 아쉬웠다. 또한 이 만화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만화에서 설명하는 켄지의 음악 인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지나치게 켄지 위주로 흘러가는 구성도 아쉬움을 더했다.

아무리 자정이 넘어서 보았다지만, 20세기 소년을 보면서 졸리다니, 이럴 순 없어! 라는 한탄도, 걸걸한 켄지의 목소리라니 라든가 경망스런 요시츠네라니 라든가 즐거운 칸나라니 라든가 하는 마음 속의 외침도 이제는 소용없어진 일이지만 (반지의 제왕을 제작할 때 팬사이트의 지원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왜 이 영화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지만, 작가가 살아있으니 뭐) 1장에 대한 비판이 일본 내에서도 없지는 않을테니 2장, 3장은 좀 더 분발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않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영화로는 남지 않았으면 한다. 허지웅님의 말 처럼 밥레논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움이 전부라면 1장만으로 충분할테니까.

만화는 소설과 달리 독자의 상상력의 범위가 제한된다. 그래서 영화가 되었을때의 기대도 다를 것이다. 소설처럼 상상했던 인물이나 상황이 실제 영상으로 재현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다크나이트가 배트맨과 조커를 재창조했듯 20세기의 소년들을 그대로 필름으로 옮기기보다는 재해석한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최종 편집권에 대한 권리 때문에 영화를 거절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뒷 이야기가 더 아쉬움을 남긴다.


덧. 그런데 어째서 1장이 강림인거지? 이 강림이 성모 강림은 아닐테고... 친구 강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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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8, 2008 23:00 09 18, 20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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