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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부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떤 기준이 있다. 특정 인물이나 직업 등으로 사회적 기준일수도 있고, 혹은 집의 생김이라던가, 현금, 차 등의 물질적인 기준일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라는 기준도 있겠다. 이런 부의 기준에 대해 국가기관이나 통계 업체들은 보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소득세를 부과하는 기준,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기준, 상위층/중산층/하위층 등으로 나누는 기준 등등. 신문이나 뉴스를 보거나,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할 때, 우리는 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부의 기준이 절대적이 될 수 있을까. 일괄적인 잣대로 모든 사람을 나누길 원하는 사람들에게야 당연히 절대적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조차 절대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신문 등에서 발표하는 국가 단위의 통계만 봐도 한 나라에서의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멀리갈 것까지도 없이, 스스로 부자라고 칭하는 부자가 별로 없다는 것만 봐도 부는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래보다는 위를 보아야한다는 말을 어찌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항상 자신보다 위의 부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대부분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주관적인 기준에서 항상 가난하다.

가은이의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100%가 나온다고 한다. 건우의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저소득 가정에 지원되는 양육비 지원도 신청하고 왔다. 가능한한 얻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다 받으려고 궁리하는 것이 우리네 생활이다. 적절한 세금도 내고 있고, 국회의원 월급이나 차벽용 차량 구입 같은 얼토당토않은 일들에 세금이 쓰이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것이 더 낫기도 하고, 내가 받는다고 다른 누가 못받는 것도 아닐테니 준다면 응당 받아야겠지만, 이런 지원을 받을만한 수준인가 하는 의문이 마음 한켠을 씁쓸하게 한다.

자본주의이건 공산주의이건 무슨 상관인가 싶다.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개개인이 함께 먹고 살 수 있어야,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부가 재분배되어야 제대로 된 체제가 아닐까. 가난은 교육으로 씻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줄여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당장 입을 옷이 없고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평안히 가십시오. 몸을 따뜻하게 하십시오. 배불리 먹으십시오." 하고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대인의 성경] 야고보서 2 : 15 ~ 16

그리고, 진정한 국가 정책이란 국가원 중에서 보다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진짜가 아닐까. 오른손으로 부자들과 히히닥거리면서 왼손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하는 척하는 전시 행정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경우 정부보다 더 정부스러운 사람들이 참 고맙다.
2009/08/03 14:06 2009/08/03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