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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 그 미묘한 차이

어제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다가, 무심코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보통 손잡이를 잡게 되는 팔의 각도가 아니었다. 뭐지, 하고 고개를 올려보니, 내가 잡은 손잡이가 다른 손잡이보다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게 신문에서 봤던 낮은 손잡이구나 싶었다. 키가 작아서 열차마다 조금씩 다른 손잡이의 높이가 불편했던 내게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그러면서 둘러보니, 한 의자 뒷편에 큼지막하게 “배려석”이라고 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통 약냉방칸 같은 글자가 붙어있을만한 위치에, 노약자석에 있던 그림과 함께 써 있는 단어를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노약자석은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에게 양보해주는 자리라기보다는 일부 노인들의 지정석의 개념이 되버리고 말았다. 주위의 많은 젊은이들은 노약자석에 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고,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일상에 지쳐 쓰러지듯 앉아있는 청년이 있으면 혈기왕성한 노인들조차 짐짓 기척을 내거나 다짜고짜 끌어내기 일쑤고,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버릇없는 사람으로 몰리곤 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만삭의 어머니도 그저 젊은 사람일뿐인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이 더러워서일까. 일반석에 앉은 노인들을 볼 때, 이따금 당신네들 지정석으로 가버려,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이용하는 곳에서 자신의 불편함을 이유로 누군가의 쉼을 방해하려면 상대방의 동의와 기꺼움을 전제로 해야한다. 무작정 내쫓아버리는 것은 강도 짓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지정석은 양보보다는 불편함이 앞선다.

배려라는 말은 참 좋다. 배려는 강요를 포함하지 않는다. 배려하는 이의 양심에 의존하고, 배려받는 이의 쑥스러움을 만들어낸다. 배려는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다. 그리고, 좀 더 선하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미안함을 덜 느끼면서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불편함과 원망을 가지고 억지로 하게 하기도 한다. 세상에 더 아름답고 선한 말이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