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년 01월 26일 날마다 무력해도 돼
  2. 2010년 01월 22일 늘, 그러나 새로운
  3. 2010년 01월 12일 배려인가 갈취인가 (1)
  4. 2010년 01월 08일 벌금을 원하면 보상도 해라
  5. 2010년 01월 07일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6. 2010년 01월 05일 본질은 구차하지 않다
  7. 2010년 01월 04일 밀리언 달러 베이비, 단 하나의 소중한 비밀...?

날마다 무력해도 돼

from 사색의 꿈 01 26, 2010 10:00
작년 중순까지 약 일년여간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에 있었다. 데이터 이행 작업을 했는데, 특이하게도 전체 프로젝트에서 이행팀만이 유일하게 인터넷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출근해서 할 수 있는 건 일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 업무 집중은 둘째치고 - 시간이 굉장히 잘 갔다. 계속 일만 해야되기 때문에 하루가 더 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무시간에 다른 일들을 하는 것보다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이 더 빠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에 시간을 보는 일도, 노는 시간을 따로 쪼개는 것도 없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류한석님이 작업전환의 비용이라는 것에 대해 포스팅하셨다. 한 사람이 여러 작업(업무)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각각의 작업을 하기 위해 몰입을 하기 전에 이른바 농땡이를 피는 시간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적 무력증이라는 것이고, 이러한 낭비되는 시간이 필요요소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근로자에게 잠언같은 소중한 이론이고, 고위 임원과 리더들이 숙지해야할 절대 규칙이 아닐까.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기 전에, 혹은 육체근로자가 일을 하기 전에 몸을 풀듯, 지식근로자 역시 뇌를 풀어줘야할 필요성이 있다. 몸도 그렇듯, 뇌라는 것도 편한 것을 좋아하기 떄문에, 이따금 농땡이 시간이 실제 업무 시간보다 더 길어지거나, 업무가 후순위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시간을 차단해버리면 오히려 전환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될 수 있다. 무력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터넷만 있는 것은 아니고, 모니터 안에서 다른 짓을 못하거나 즐기지 않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하는 빈도를 높이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내 경우에도 인터넷 등으로 다른 짓을 할 수 없었기에, 다른 프로젝트에서보다 더 많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바람을 쐬러 다녔던 경험이 있다. 반사적으로 몸은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는 법이다(정신적 무력증을 해결하기 위해 담배를 피는 것이 과연 몸을 보호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러니까... 인터넷 좀 하게 해줘요. 딴 거 하고 있어도 눈치 좀 주지 마세요~~
01 26, 2010 10:00 01 26, 2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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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나 새로운

from 사색의 꿈 01 22, 2010 15:00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 최악의 일주일을 보낸 탓일게지. 어쩌면 이렇게도 일이 꼬여가는지...

또 다시 일을 그만둘 때가 되어 이리 재고 저리 재어 교활하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지만, 첫술부터 예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매일 새로운 고민과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그럴때마다 회사들과 사람들을 욕하고 있지만, 실은 거듭되는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배우지 못하고, 익숙해지지 못해 늘 엉터리 계획만 세우고, 나름 잘 판단하고 있다고 들뜨기 때문일거다.

그래도 요즘처럼 꼬여보기도 처음인 것 같다. 정말 무슨 일이 이렇게 되는게 하나도 없냐.
01 22, 2010 15:00 01 22, 20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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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인가 갈취인가

from 사색의 꿈 01 12, 2010 18:27
우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범우주적 유명 인사인 아서 덴트는 아직 파괴되지 않은 지구의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넉넉하게 남은 아서는 신문과 커피, 그리고 비스킷을 하나 산 후 어떤 남자가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서 신문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맞은편 남자가 비스킷 봉지를 뜯더니 하나 집어먹는 것이 아닌가. 아서는 당황했지만, 지극히 영국 남자다운 태도로, 모른척 했다. 그리고는 비스킷을 하나 먹었다. 잠시 후, 남자는 다시 비스킷 하나를 먹었고, 아서도 하나 먹었다. 그렇게 서로 모른 척 한 봉지를 다 먹고 난 후, 남자는 신문을 접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서가 신문을 접자, 그 아래에 뜯지 않은 비스킷 한 봉지가 보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 역시 불의를 보고는 절대 참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타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은, 아침부터 새로 나온 6권을 읽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부조리와 어이없음을 목도하고 경험하지만 그 세력에 반항할 용기는, 내 안의 어딘가에는 있긴 하겠지만 아직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나 쓰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서울도시철도의 배려석에 대해 글 을 쓴 적이 있다. 노약자 지정석이라는 말보다 배려석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포스팅을 했었는데, 얼마전에 그 배려석에 대한 스토리홍보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홍보물 속의 배려석은 내가 이해했던, 혹은 오해했던 배려석의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노약자석 같은 말을 없애고 배려석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각 객차의 양끝에 있는 지정석은 그대로 두고 배려석을 새로 만든거였다. 게다가 거기엔 지정석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양보를 위한 지정석이 아니었다(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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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약자석이 항상 비워둬야 하는 자리라는 것, 처음 알았다


더 젊었지만, 더 힘들게 일했던 예전에는 지정석에도 털석 앉아 가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는 텅텅 비어도 앉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박카스 광고가 나온 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앉지 않는다고 더러운 꼴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보를 강요하고, 몸에 버거운 배려를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하다. 소위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의 예의없음은 지정석에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시로 당하는 새치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열어 뇌라는 것이 있는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나게 해주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도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런 때에 과속하는 차가 없는 것인가 한탄하기도 한다.

도덕이나 준법 같은 것이 땅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저 우주 밖으로 집어던졌거나, 땅 깊이 묻어버린 시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요즘 늙은이들의 버릇없음 이 하늘을 찌르고 찔러 안드로메다까지 닿을 정도니 그야말로 말세다, 말세야.

물론 성급히 일반화를 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되고. 일부 초딩도 안할 짓을 하는 어른이들이 있는 반면 절로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는 어르신들도 있다. 그야말로 극과 극을 보는 기분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라면 대부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이따금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게 되면 기꺼이 먼저 양보를 해주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분들이 저런 싸가지들 때문에 함께 욕을 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아우...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여성전용칸이 있던 것처럼, 객차를 연령별로 나누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족칸, 50대 이상칸, 30대 이상칸, 20대 이상칸, 10대 이상칸... 십여년의 전철 생활 동안에 젊거나 어린 사람들에게서 받은 불쾌감은 조금 크게 대화를 하는 것 정도였던데 반해 강제로 양보하게 하거나, 욕을 하거나, 밀치거나, 새치기하거나, 주정부리는 것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같은 칸에 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명하지 않을까.

오잉님의 글 처럼 예의는 존중이다. 법적으로 강제하기 이전에 인간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진 최후의 보루와 같은 것이다. 그런 예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방이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예의없이 대하면서 상대에게 예의를 바라는 것은 파렴치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그런 면에서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더 예의바르다는 주장은 충분히 정당하다. 상대는 안하무인의 늙은 사람들이니까.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까.
01 12, 2010 18:27 01 12, 20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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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드 2010年 01月 14日 09時 12分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좀 심한 말로 X가 무서워 피하나.. 단지 더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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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의 폭설로 며칠째 길이 말이 아니다. 행인들에 의해 다져진 눈은 녹을 생각을 안하고, 그나마 눈을 치우면서 한켠에 쌓아올려진 눈은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대책이 안선다. 날씨도 추운데 조심조심 걷느라 외출 후의 피곤이 두배는 더 깊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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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CYON | SU900 | Manual W/B | F2.7 | No Flash | 2010:01:04 07:13:27

사실 눈이 내려도 너무 내리긴 했다. 우리 동네는 아직도 저 모양....


1. 그런데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니, 집 앞에 쌓인 눈을 안치우면 벌금 100만원을 물리겠다고 하더라. 허 참. 내 집 앞 눈 치우기 캠페인도 있고, 가족과 행인을 위해 눈이 오면 집이나 가게 앞을 치워주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건 기꺼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다. 왜냐? 일단, 집 앞 거리는 내 소유가 아니다. 무료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지만, 국가에 속한 토지이다. 그럼에도 눈을 치워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눈을 안치우면 벌금이라니.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쓰레기 안챙겨가면 벌금이라고 하는 격 아닌가. 그런데에 쓰라고 낸 내 세금은 누구 호주머니로 들어가는건가?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시민들에게 갖추게 하기 위해 벌금을 매긴다고 하자. 그럼 누구의 집 앞도 아닌 도로 및 광장 등에서 미끄러지면 보상 해줄건가? 다치고 자시고를 떠나 내가 사용하는데에 불편을 겪은 것만으로도 보상 해줘야하지 않나? 혹시 그건 관리를 맡은 하청업체에 떠넘기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 우리 제발 개념 좀 갖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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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 조합 파업을 불법이라고 떡하니 광고하다니, 책임 전가의 고수들이구나~ (아 이 죽일 놈의 폰카 화질...)


2. 철도공사는 더욱 가관이다. 일주일 내내 제대로 전철을 이용하지 못했다. 날씨도 추운데 연착은 당연하고,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사람이 미어터져도 열차는 증편되지 않는 것 같다. 댁들도 한번 집에 가보려고 추운 플랫폼에서 한시간동안 기다려봐야, 아~ 추운데서는 잠을 안자도 입이 돌아가는구나, 알게 될거야, 응?
철도 파업때는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제 얼굴에 침이 아니라 가래를 내뱉으면서 기관사들 나쁜 놈들인데 자기들 덕분에 그나마도 운행했다는 듯 얘기하더니만, 열차 스케쥴 하나 제대로 못고치고, 고장난 열차를 시민들이 문 닫고, 비닐로 그냥 덮어서 운행하니? 시민들 평소에 운동 안할까봐 3번 홈으로 가랬다가 1번 홈에 열차 온댔다가 하는거고, 전쟁날까봐 피난 훈련 시키느라 콩나물도 안자랄만큼 빽빽하게 태우고 가는거지?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난다, 그래. 내 평생 - 비록 속으로지만 - 육두문자를 그렇게 많이 써보기도 처음이다. 눈이 왔는데 왜 출입문이 고장나고, 고작 영하 20도도 안되는 날씨에 문이 얼어붙니? 그 열차, 러시아에 팔았다간 올 리콜되겠구나.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후의 모습이 진짜 글자 그대로 기록적이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에, 말도 안되는 대처들이다. 홍수는 4대강 사업으로 대비한다고 하는데, 폭설은 뭘로 대비하려나. 전국에 돔이라도 세우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른 건 그렇다쳐도 구경거리는 확실하겠다.
01 8, 2010 13:32 01 8, 20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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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 아니 우리나라의 문화의 차이를 대자면 너무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족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근대화를 이룬 지금은 꽤나 핵가족화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과년한 자녀와 혼인한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사별하지 않은 부모를 모시는 일에 - 모시지 않더라도 - 마음을 쓰는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에 비춰지는 가족에 대한 모습이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사뭇 다르다. 부모의 인생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모 역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부모의 새로운 인생이나 일탈에 대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거나 그런 사건들에 의한 자신의 위치와 상황 변화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리나라의 방식이라면, 다른 나라는 부모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맘마미야" 만 보더라도 엄마의 일상에 돌맹이를 던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바위덩어리를 던지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부모의 일상의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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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지만, 번화한 도시는 그들에겐 낯선 곳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주된 이야기는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 그리고 그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남편에 대한 서로에 대한 사랑이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일상적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버킷리스트"처럼 죽기 전에 해보지 못한 특별한 일들을 해보려 마음먹는 것은 아니다.

트루디는 남편의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의사로부터 여행이라도 떠나보라는 말을 듣지만, 루디는 고지식하고 모험과 일탈을 모르는 남자라는 것을 알기에 여행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트루디는 루디와 함께 베를린의 아들 내외와 딸을 보러 모처럼의 외출을 하고, 트루디의 청으로 바다를 보러 간다. 그런데 그 바다에서 트루디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루디는 아내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의 흔적을 더듬다가 후지산에 대한 아내의 열망을 발견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막내 칼에게 가게 된 루디는 한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유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후지산을 보러 간다. 그리고 며칠동안 구름에 가려져 있던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낸 어느 날 아침, 루디는 호숫가에서 부토를 춤으로 아내와 함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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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땅이, 아내는 왜 그리 좋았을까


우리는 늘 시간이 많은 것처럼 살고 있다. 우리에게 어떤 사고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어떤 병에라도 걸릴 수 있다는 것 - 그리고 크리스쳔이라면 그 날이 바로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 - 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많은 일을 미뤄놓고 살아간다, 특히 가족을 위한 일들을. 그러나 우리가 늙거나 젊거나, 건강하거나 허약하거나에 관계없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을지도 모른다. 그 짧은 시간동안 가족과 꿈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다면 - 만족할만큼 할 수야 없지만 - 그 후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가족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사람들은 그를 마음에 묻는다. 결코 잊을수도 없고 슬픔과 후회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배우자를 떠나보낸 사람과 부모를 떠나보낸 자녀의 마음이 같을 수 있을까. 자녀는 마음에 묻고 때때로 추억하고 슬퍼하고 후회하지만, 배우자를 떠나보낸 이는, 아마도, 늘 함께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에, 모든 삶 속에서 여전히 그 마음이 함께인데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아픔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가능하다면 알고 싶지도 않다).

루디와 트루디는 베를린의 자녀들을 만나러 가지만, 그들은 오랫만에 찾아온 부모를 부담스러워 한다. 겨우 하루의 시간조차도 힘들어하고 어서 돌아가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트루디가 죽은 후 일본을 찾은 루디를, 막내 아들 칼 역시 힘들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노부에게 손을 내민 것은 타인이었다. 가족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루디와 트루디에게 베를린 관광을 시켜주고, 트루디의 꿈을 이해한 것도, 낯선 일본 거리를 헤매는 루디에게 부토를 가르쳐주고 후지산까지 함께가주는 것도 모두 낯선 이들이다. 부모에게 자녀들은 여전히 그들이 마지막에 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찾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자녀들은 부모가 그저 그림자로, 사진 속의 추억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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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가족은 늘 화목하지만...


한가지 더 씁쓸한 것은, 트루디가 죽고 난 후에, 자녀들이 하는 말이었다. 머나먼 독일에서도, 홀로 남은 아버지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엄마는 하필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갔느냐는 말에서, 몇 안되는 전세계 공통적인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가정에서도 알게 모르게 고립되어가는 아버지들의 현실이,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슬프게 다가온다.

갑작스레 루디를 떠나보낸 트루디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짧았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리고 일본을 그토록 바라던 아내, 가족을 위해 부토 댄서라는 자신의 꿈을 접었던 아내에 대한 후회에 사로잡힌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서 남겨주는 것은, 아마 대체로 후회와 미안함일 것이다. 루디는 그의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에게 못해준 것을 해주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고, 아내의 옷을 입고 동경 곳곳을 돌아다닌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은 그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록 "P.S. I Love You"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 글에서 말했듯 사랑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니까. 혹은, 남겨진 시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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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舞蹈, 그것을 통해 그들은 마지막 숨을 몰아쉰다


덧. 이 영화는 휴먼드라마적인 로맨스이지만,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미성년자와는 절대 같이 보지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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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 Cherry Blossoms - Hanami / Kirschblüten - Hanami


01 7, 2010 18:18 01 7, 20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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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반 년 이상을 가은이와 함께 유치부 예배를 드렸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아내는 둘째를 보아야 하기 떄문이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고 뻘쭘했다.

아이들 예배는 굉장히 정신없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잘 안나지만 - 나 역시 그랬겠지 - 어쩌면 그렇게 와글와글, 조잘조잘, 시끌시끌대는지 예배를 귀로 듣는지 코로 듣는지 정신 못차리고 있다보면 끝나버린다. 그럼에도 매우 재미있고 유익하다. 특히 목사님의 간결한 말씀은 그야말로 복음의 정수만을 뽑아내어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알려준다.

그런데 가은이가 5세반이 되면서 혼자 예배를 드려야하게 되었다. 이제 다 컸구나 싶을 정도로 씩씩하게 혼자 예배를 드리는 -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 가은이를 두고 본당 유아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송구영신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예배시간에 10분, 20분의 짧은 시간동안 설교를 하시는 목사님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들과 다르게 어른들에게는 좀 더 이론적이고 사회적인 - 아이들 설교가 더 현실적이긴 하다 - 설교가 필요하고, 어른들에게만 들려주어야 하는 것들도 있고. 물질적인 이야기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 중에서 정말 우리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 얼마나 있는 것일까. 매주마다, 혹은 한 주에서 서너번 이상 설교를 듣고, 때때로 부흥회나 집회로 듣고, TV나 라디오로 듣고... 수많은 설교를 듣고 그 중에 비슷한 내용을 셀 수 없을 만큼 반복해서 듣지만, 그 모든 말들이 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일까. 일례로, 헌금이나 십일조를 갈구하는 설교를 한시간여동안 참고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진리는 너무 단순해서 날마다 그 진리만 반복한다면 오히려 더 금새 질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뼈에 살도 붙이고 꼬리도 붙이고 다리도 붙이는 것이겠지. 하지만 살이 너무 두툼해서, 모습을 보니 소의 모습인데 뼈를 발라보니 생선뼈가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01 5, 2010 11:07 01 5, 20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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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그 이름은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사람에게도 유명한 이름이다. 석양의 무법자 등으로 유명한 서부극의 대표적인 배우이고, 뛰어난 감독이자 제작자인, 어느덧 81세의 명배우이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그가 출연하거나 제작, 혹은 감독한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다지 영화광도 아니고, 고전을 찾아보는 수고를 애써 하는 편도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지만, 최근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걸 감안하면,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해야 더 맞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복싱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한 때, 혹은 지금도 남자들이 열광하는 K-1 등의 이종격투기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쿡 인터넷존에서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아서일수도 있고, 이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비슷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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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키는 매기를 위해 고집을 버리지만, 매기는 그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


프랭키는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는 조심스러운 트레이너이다. 그는 선수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경기나 타이틀전에 대해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체육관을 맡은 스크랩이 눈을 다쳐 선수 생명을 잃은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의 체육관에 매기가 들어온다. 여자 복서를 맡고 싶지 않았던 프랭키는 처음에는 돈 때문에 그녀를 받아들이고, 다음에는 그녀의 열정과 솔직함에 받아들이며, 다음에는 그녀의 꿈에 받아들인다. 그렇게 매기는 선수가 되고, 이기고, 마침내 타이틀전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반칙적 경기로 유명한 챔피언과의 타이틀전에서 척추 손상을 입고, 목 아래가 마비된다. 그런 그녀를 프랭키는 헌신을 다해 돌보지만, 매기는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려 하고 프랭키에게 마지막 부탁을 남긴다.

영화는 복싱영화답지 않게 역동적이지 않다. 매기는 매 경기마다 1회 KO승을 거두는 유능한 선수이지만, 그가 받는 화려한 찬사와 명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고생스러운 훈련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열세인 상황에서 - 흔히 영웅주의적 이야기로 - 극적으로 승리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곁에 없는 딸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프랭키와 가족과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매기, 그리고 꿈을 잃고 그 꿈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스크랩의 삶을 덤덤한 스크랩의 목소리로 들려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깊이 몰입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짙은 감동을 꺼내오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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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 Canon EOS-1D Mark II | Shutter Priority | Multi-Segment | 1/160sec | F4 | 0EV | 50mm | ISO-400 | No Flash

MoCuishle


프랭키에게 매기는 단순히 가능성 있는 선수가 아니라 그의 딸이었다. 그리고 매기에게도 프랭키는 매니저일뿐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아버지였다. 되돌아오는 딸에게의 편지와 돈밖에 모르는 매기의 가족은 더욱 이들을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로, 모쿠슈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매기는 더 천방지축일 수 있었고, 프랭키는 그녀를 받아주고 마지막까지 돌보아줄 수 있었으리라.

사람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 언제일까. 단 하나뿐인 꿈을 향해 달렸고, 성취했는데, 그 꿈이 몰락해가거나 자신이 그 이룬 꿈에 비해 보잘것없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하고 있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진정한 꿈이란, 꿈을 이루고 그 꿈을 넘어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더 높은 꿈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테니까.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도, 힐러리 스웽크의 팔짝팔짝 뛰는 연기도 좋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저음 목소리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이런 목소리로 멜로라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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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베이비 / Million Dollar Baby


01 4, 2010 15:43 01 4, 20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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