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에 해당되는 글 3건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가 미국산 쇠고기가 잘 안팔려 고민하다가 내놓은 방안이 바로 1년도 넘은 일을 끄집어 내어 배우 김민선을 고소한 것이다. 순전히 김민선의 발언 때문에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지 않아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말을 함부로 하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이건 뭐 정신머리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아무리 나경원이 국민들을 호구로 알았다고 일개 정육업체까지 국민을 뭐로 봐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우리가 세살먹은 어린애가 아닌 바에야 한 배우가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광신하여 사고 싶은 욕망도 누르고 먹고 싶은 것도 꾹 참겠는가. 아니, 세살 먹은 우리 딸도 저 하고 싶은 것은 부모가 뭐라 해도 한다. 아무래도 국민들을 먹이면 먹는 신생아로밖에 보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이번 사건은 철저하게 홍보성 소송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지고, 호주산 쇠고기가 원산지와 맛 뿐만 아니라 가격으로까지 승부를 걸어대고 있으니 무슨 수라도 써야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정신머리가 없는 사람들이다보니 수를 잘못 썼다. 미국산 쇠고기가 무엇인가. 바로 광우병 위험으로 인해 국민의 상당수가 극렬하게 수입을 반대했던 물건이다. 아마 조용히 두면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그 광우병 사건이 점점 잊혀져 어느 정도의 판매를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는 것은 곧바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다시금 광우병 위험에 대해 떠올리게 만드는 것인데, 이걸 홍보라고 궁리했다면 그 정신머리를 얼른 추스려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확 사업을 접어버리고 싶은 것일까.

거기에 전여옥까지 나서 이제는 아예 국민들의 입까지 막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나경원이 국민들은 들을 필요 없음 하고 못박더니, 이제는 말할 필요도 없음 이다. 다음에 한나라당이 들고 나올 카드는 볼 필요 없음 일까. 아니 이미 저작권법 개정으로 볼 필요 없음 이 시행되버린 것일테니, 우리는 이제 눈 가리고 귀 덮고 입 막고 있는 신세가 되버렸다. 누구누구는 좋겠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개인 홈페이지 등이 공개되어 있어서 인기있는 이의 경우 입소문으로 널리 퍼질 수 있다 뿐이지, 사실상 이건 개인의 공간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말한다는 것에서 오프라인에서의 공개 연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깃집에서 고기구워 먹으며 친구와 이야기하는 공간에 더 적합하다. 특히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는 그런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식당에 사람이 많다보니 좀 큰 소리로 대화를 했는데, 옆 테이블에서 그걸 듣고 그 옆 테이블로 전하고 다른 테이블로 전하고... 해서 모두가 그 대화를 듣게 된 것이다. 그럼, 말 안하고 고기만 먹을까. 혹은 집에서 친구와 단 둘이 이야기했는데, 입 가벼운 친구가 여기저기 퍼트리면, 친구를 끊어야 하나, 집에서도 입 막고 있어야 하나.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수입업체나 전여옥 혹은 변희재와 같은 인사들의 정신 상태를 심각하게 걱정해야할 정도이다.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사멸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수준이 낮게 군다는 것은 그들의 자질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래서야 허경영이 더 수준이 높아보이지 않는가.

ps. 이참에 김민선 측에서도 사과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둥, 학교를 쫒아디니며 홍보대사를 해달라는 둥(음? 혹 츤데레???) 면박을 주고 있으니, 명예훼손이라도 맞고소를 거는 건 어떨까? 근데 소송이 성립될까? (아, 이 얕은 지식...)
2009/08/14 09:23 2009/08/14 09:23
건우로 인해 마트를 혼자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바람도 쐬어줄겸 가은이를 데리고 나오긴 했는데, 서둘러 장을 보는 바람에 결국 가은이는 카트 안에 갇혀버렸다. 카트 밀고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아빠를 생각해서인지 졸려서인지 얌전히 잘 앉아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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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CYON | SU900 | Auto W/B | F2.7 | No Flash | 2009:07:25 12:56:51

짐 정리하기 전에 찰칵~


2009/08/07 09:42 2009/08/07 09:42
TAG Keyword 가은,
보통 부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어떤 기준이 있다. 특정 인물이나 직업 등으로 사회적 기준일수도 있고, 혹은 집의 생김이라던가, 현금, 차 등의 물질적인 기준일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라는 기준도 있겠다. 이런 부의 기준에 대해 국가기관이나 통계 업체들은 보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소득세를 부과하는 기준,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기준, 상위층/중산층/하위층 등으로 나누는 기준 등등. 신문이나 뉴스를 보거나,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할 때, 우리는 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부의 기준이 절대적이 될 수 있을까. 일괄적인 잣대로 모든 사람을 나누길 원하는 사람들에게야 당연히 절대적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조차 절대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신문 등에서 발표하는 국가 단위의 통계만 봐도 한 나라에서의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멀리갈 것까지도 없이, 스스로 부자라고 칭하는 부자가 별로 없다는 것만 봐도 부는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래보다는 위를 보아야한다는 말을 어찌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항상 자신보다 위의 부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그들의, 그리고 우리들의 대부분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주관적인 기준에서 항상 가난하다.

가은이의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100%가 나온다고 한다. 건우의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가 저소득 가정에 지원되는 양육비 지원도 신청하고 왔다. 가능한한 얻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다 받으려고 궁리하는 것이 우리네 생활이다. 적절한 세금도 내고 있고, 국회의원 월급이나 차벽용 차량 구입 같은 얼토당토않은 일들에 세금이 쓰이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것이 더 낫기도 하고, 내가 받는다고 다른 누가 못받는 것도 아닐테니 준다면 응당 받아야겠지만, 이런 지원을 받을만한 수준인가 하는 의문이 마음 한켠을 씁쓸하게 한다.

자본주의이건 공산주의이건 무슨 상관인가 싶다.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개개인이 함께 먹고 살 수 있어야, 주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부가 재분배되어야 제대로 된 체제가 아닐까. 가난은 교육으로 씻는 것이 아니라, 함께 줄여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당장 입을 옷이 없고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평안히 가십시오. 몸을 따뜻하게 하십시오. 배불리 먹으십시오." 하고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대인의 성경] 야고보서 2 : 15 ~ 16

그리고, 진정한 국가 정책이란 국가원 중에서 보다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진짜가 아닐까. 오른손으로 부자들과 히히닥거리면서 왼손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하는 척하는 전시 행정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경우 정부보다 더 정부스러운 사람들이 참 고맙다.
2009/08/03 14:06 2009/08/03 1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