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인가 갈취인가

우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범우주적 유명 인사인 아서 덴트는 아직 파괴되지 않은 지구의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넉넉하게 남은 아서는 신문과 커피, 그리고 비스킷을 하나 산 후 어떤 남자가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서 신문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맞은편 남자가 비스킷 봉지를 뜯더니 하나 집어먹는 것이 아닌가. 아서는 당황했지만, 지극히 영국 남자다운 태도로, 모른척 했다. 그리고는 비스킷을 하나 먹었다. 잠시 후, 남자는 다시 비스킷 하나를 먹었고, 아서도 하나 먹었다. 그렇게 서로 모른 척 한 봉지를 다 먹고 난 후, 남자는 신문을 접고 일어나 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서가 신문을 접자, 그 아래에 뜯지 않은 비스킷 한 봉지가 보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 역시 불의를 보고는 절대 참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타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은, 아침부터 새로 나온 6권을 읽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부조리와 어이없음을 목도하고 경험하지만 그 세력에 반항할 용기는, 내 안의 어딘가에는 있긴 하겠지만 아직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나 쓰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서울도시철도의 배려석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노약자 지정석이라는 말보다 배려석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포스팅을 했었는데, 얼마전에 그 배려석에 대한 스토리홍보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홍보물 속의 배려석은 내가 이해했던, 혹은 오해했던 배려석의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노약자석 같은 말을 없애고 배려석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각 객차의 양끝에 있는 지정석은 그대로 두고 배려석을 새로 만든거였다. 게다가 거기엔 지정석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양보를 위한 지정석이 아니었다(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배려석

노약자석이 항상 비워둬야 하는 자리라는 것, 처음 알았다


더 젊었지만, 더 힘들게 일했던 예전에는 지정석에도 털석 앉아 가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는 텅텅 비어도 앉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박카스 광고가 나온 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앉지 않는다고 더러운 꼴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양보를 강요하고, 몸에 버거운 배려를 해야 하는 일은 여전하다. 소위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의 예의없음은 지정석에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수시로 당하는 새치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열어 뇌라는 것이 있는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뭉클뭉클 솟아나게 해주고,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도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왜 이런 때에 과속하는 차가 없는 것인가 한탄하기도 한다.

도덕이나 준법 같은 것이 땅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저 우주 밖으로 집어던졌거나, 땅 깊이 묻어버린 시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요즘 늙은이들의 버릇없음이 하늘을 찌르고 찔러 안드로메다까지 닿을 정도니 그야말로 말세다, 말세야.

물론 성급히 일반화를 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되고. 일부 초딩도 안할 짓을 하는 어른이들이 있는 반면 절로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는 어르신들도 있다. 그야말로 극과 극을 보는 기분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라면 대부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이따금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게 되면 기꺼이 먼저 양보를 해주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런 분들이 저런 싸가지들 때문에 함께 욕을 먹는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아우…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여성전용칸이 있던 것처럼, 객차를 연령별로 나누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족칸, 50대 이상칸, 30대 이상칸, 20대 이상칸, 10대 이상칸… 십여년의 전철 생활 동안에 젊거나 어린 사람들에게서 받은 불쾌감은 조금 크게 대화를 하는 것 정도였던데 반해 강제로 양보하게 하거나, 욕을 하거나, 밀치거나, 새치기하거나, 주정부리는 것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는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같은 칸에 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명하지 않을까.

오잉님의 글처럼 예의는 존중이다. 법적으로 강제하기 이전에 인간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진 최후의 보루와 같은 것이다. 그런 예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방이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예의없이 대하면서 상대에게 예의를 바라는 것은 파렴치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그런 면에서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 더 예의바르다는 주장은 충분히 정당하다. 상대는 안하무인의 늙은 사람들이니까.

좋은 세상은, 언제쯤 올까.

One Comment

  1. 응답
    시드 2010년 1월 14일

    좀 심한 말로 X가 무서워 피하나.. 단지 더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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