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6장 [열기]



이 말씀은 묵상하기 참 난감한 말씀이다. 드러나는 가장 큰 주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권위인데,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이 말씀을 보며 어떤 묵상을 했을지 궁금하다. 물론, 모세와 아론은 타락한 지도자들도 아니었지만, 타락의 기준이 본래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니만치, 자신이 고라와 다단은 아닌지 성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나 역시 한국 개신교의 기득권층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지나치게 지도자 편향적으로 도당을 맺는 크리스쳔들을 염려하지만, 목사들의 말씀이 순전한 메시지가 아니라고 단정하지 못하기에 때로 스스로의 정의감에 취한 고라의 모습이 아닌가 저어 걱정스럽긴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군중의 비판을 받는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도 포함하고 있다. 역사로 보건대 모세와 아론은 정직했고, 억울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대표했으며, 그들 중 높았다. 우리의 지도자들 역시 그러한가?

당시는 모세만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사람들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 성막의 휘장이 찢기워지며 우리는 모두가 제사장이고 백성이고 아들이 되었다. 예수를 영접한 모든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에게 부탁하여 소원을 구하고, 누구를 통하여 응답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딸의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자유를 얻었으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무리 위에 군림하려는 지도자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덕분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고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지 말라셨음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비난할 수 밖에 없다. 구차한 핑계일런지도 모르지만.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모세 시대나 다윗 시대와의 지도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시대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께서 미리 알려주셨듯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총회 위에 서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모세가 아닌 한. 마땅히 총회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이 섬겨지길 원하는지 돌아보아야 하고, 성도는 지도자를 섬기며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와 평신도가 서로 섬기는 교회,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 시대에 원하시는 모임의 모습이 아닐까.
2009/09/14 14:59 2009/09/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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