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나라당의 나경원씨가 국민을 호구로 생각하는 개념찬 발언을 했다. 그것은 지독한 자만과 경멸을 담뿍 담아 잘 포장한 말이다. 나도 잘 모르는데 너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는 경멸과 너희가 나보다 잘날 수 있겠느냐는 자만을 화려한 언변과 변명 속에 숨겨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아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나경원씨가 말하는 것처럼 국민이 정말 호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을 사면 포장 안에는 사용설명서가 들어있다. 물건을 살때는 사용목적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개의 제품들의 기능이 그만그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설명서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설명서를 대충 만들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기능이나, 특별한 상황, 고장 등의 이유에서 보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별다른 이유 없이도 정독을 하는 - 나같은 - 사람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미국 드라마 몽크에서 몽크의 형처럼 문체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문학작품을 만들듯 설명서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의약품 설명서는 지독히도 전문가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전문용어와 약품 이름들. 의/약사는 대부분 이미 알고 있어서 보지 않고, 환자는 봐도 알 수 없어서 보지 않는 종이 낭비에 불과한 것이 의약품 설명서이다.
나경원씨는 국민들이 세세하게 알 수도 없고,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 때문에 여론조사도 하지 않고, 국민에게 이해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쓸모없는 의약품 설명서보다 더 쓸모없는 것이 국회의원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개발자급에 속하는 일반 국회의원이나 상임위원들은 그렇다쳐도, 대변인까지 두고 있는 정당이 사용법을 제대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은, 숨겨진 오류나 부작용이 있거나, 정작 만든 이들이 뭘 만든건지 모르는 경우이지 않겠는가. 이 경우에는 전자가 될 것 같고.
미디어법에서 국민들에게 여론수렴을 하게 되면 다른 법안에 대한 형평성 문제로 인해 모든 법안에 국민 여론수렴 절차를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국회의 권한인 입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어차피 우리는 법에 대해서는,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대표자에게 맡기는 형식을 택했다. 하지만, 사실상 대표자가 구성원의 의견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리원칙만을 따질 수도 없고, 모든 일에는 예외도 있는 법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 것도 사실상 모든 국민의 의견을 모을 수가 없기 떄문이 아닌가. 요즘같이 인터넷과 통신이 잘 발달되어 있고, 대량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법안에 여론수렴 과정을 넣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국회라는 곳은 이해하기 힘든 직장이고, 그 직원들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순전히 국민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유지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민을 병신취급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직장에서는 돈을 벌어주는 고객에게 넌 설명해줘도 모르니 닥치고 쓰고 돈이나 내셈, 하면 아마 그 회사는 문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클레임하나 걸지 못하니, 이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계속 앞으로 나아갔어도,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살고 행복한 나라까지는 한참 멀었을텐데, 점점 뒤로 더 뒤로 가기만 하니, 내 생전에 그 날은 요원할 듯 하다.
전자제품을 사면 포장 안에는 사용설명서가 들어있다. 물건을 살때는 사용목적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개의 제품들의 기능이 그만그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설명서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고 설명서를 대충 만들어서는 안된다. 새로운 기능이나, 특별한 상황, 고장 등의 이유에서 보게 될 경우도 있을 것이고, 별다른 이유 없이도 정독을 하는 - 나같은 - 사람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미국 드라마 몽크에서 몽크의 형처럼 문체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문학작품을 만들듯 설명서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의약품 설명서는 지독히도 전문가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전문용어와 약품 이름들. 의/약사는 대부분 이미 알고 있어서 보지 않고, 환자는 봐도 알 수 없어서 보지 않는 종이 낭비에 불과한 것이 의약품 설명서이다.
나경원씨는 국민들이 세세하게 알 수도 없고,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 때문에 여론조사도 하지 않고, 국민에게 이해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쓸모없는 의약품 설명서보다 더 쓸모없는 것이 국회의원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개발자급에 속하는 일반 국회의원이나 상임위원들은 그렇다쳐도, 대변인까지 두고 있는 정당이 사용법을 제대로 밝힐 수 없다는 것은, 숨겨진 오류나 부작용이 있거나, 정작 만든 이들이 뭘 만든건지 모르는 경우이지 않겠는가. 이 경우에는 전자가 될 것 같고.
미디어법에서 국민들에게 여론수렴을 하게 되면 다른 법안에 대한 형평성 문제로 인해 모든 법안에 국민 여론수렴 절차를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국회의 권한인 입법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어차피 우리는 법에 대해서는,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대표자에게 맡기는 형식을 택했다. 하지만, 사실상 대표자가 구성원의 의견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리원칙만을 따질 수도 없고, 모든 일에는 예외도 있는 법이다.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 것도 사실상 모든 국민의 의견을 모을 수가 없기 떄문이 아닌가. 요즘같이 인터넷과 통신이 잘 발달되어 있고, 대량 정보처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법안에 여론수렴 과정을 넣자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국회라는 곳은 이해하기 힘든 직장이고, 그 직원들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순전히 국민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유지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민을 병신취급하고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보통 직장에서는 돈을 벌어주는 고객에게 넌 설명해줘도 모르니 닥치고 쓰고 돈이나 내셈, 하면 아마 그 회사는 문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클레임하나 걸지 못하니, 이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계속 앞으로 나아갔어도, 모든 이들이 함께 먹고 살고 행복한 나라까지는 한참 멀었을텐데, 점점 뒤로 더 뒤로 가기만 하니, 내 생전에 그 날은 요원할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