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려서 책을 좋아하지 않은 아이는 거의 없다. 어른이 되어서야 어떻든 어렸을때는 누구나 -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 많이 읽고, 자주 읽는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점차 읽는 책의 목록에서 교과서와 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책을 읽는 시간을 다른 일 - 게임이나 영화, TV, 그리고 일 - 을 하는 시간이 잠식해가면서, 즉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격하게 낮아지곤 한다. 나 역시 어렸을때 제법 책 좀 읽었다고 침을 뱉을만했고, 고등학생때는 학교 바로 옆의 도서관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며, 야자시간에 만화와 소설을 탐닉했던 과거를 갖고 있지만, 요즘은 한달에 책을 읽는 시간이 닥터 후 시즌 하나를 보는 시간보다 적으니 할 말이 없다.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10점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시공사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은 영화 Before Sunset에 나왔고, 율리시즈를 처음 출판한 것으로 유명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제레미 머서는 사회부 기자로 일하던 캐나다에서 무작정 떠나 파리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내 돈이 떨어져 노숙자로 전락할 위기에서 그는 공짜로 잘 수 있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과 많은 책과 무엇보다 조지 휘트먼을 만나 작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눅눅한 책 냄새와 함께 했고,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지독한 공산주의자인 조지에게 빠져들었고, 간이 침대에 앉아 페이퍼북을 읽고 있는 상상을 했다. 아무렴 어때, 라는 마음이 가득차고, 모두 다 잘될거야 라는 최면에 걸릴법했다. 가보지 않았지만 어느새 이 서점은 내게 향수 가득한 곳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도서관에 잘 가지 않게 되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권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책 머릿말을 읽으며 책을 고르던 일이 줄어들면서 리뷰만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서점 구석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즐거움도 없어졌다.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그 작품을 접하는 것뿐이 아니라 그 책을 발견하고, 고르고, 손에 넣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제레미 머서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살아가는 일상과 그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사건들에 치우쳐진 이 이야기는, 그러나 나에게는 서점을 가는 즐거움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파리에 가는 날, 난 에펠탑보다, 노트르담 성당보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먼저 찾게될지도 모르겠다.
2008/06/30 16:51 2008/06/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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