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열기]



이스라엘은 그와 함께 살지 않았던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한 후, 마지막 때에 그의 열 두 아들들을 축복한다. 이 축복은 중동지방,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풍습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보았을때에는 상당히 의아스러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장자권을 받게 된 유다와 이스라엘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좋은 것으로 가득 복을 빌어주면서 시므온과 레위에 이르러서는 독설에 가까울 정도로 저주를 퍼붓는다. 하지만 성경은 각자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객관적이지 못하다.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백만원씩 버는 우리의 형편이 고달프다고 한탄하기 일쑤다. 언제나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고, 자신의 형편이 가장 어렵다. 기준은 언제나 자신이지만, 기준 자체가 밑바닥 기준이라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데다가, 우리는 위를 볼 줄만 알지, 밑을 보며 반성할 줄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환경과 여건은 각자의 분량대로 나눠 주신 것이다. 먹고 살만큼, 쓸 수 있는 만큼 부를 주신다. 일을 할 수 있을만큼 능력을 주시며, 일을 주신다. 우리가 불평인 것은 우리의 분량이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평만 하지 말고, 받은 것에 순응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야곱의 축복을 통해 성경은 말씀하신다.

누구나 유다가 받은 복을 원하며, 요셉의 복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레위가 되어야 하며, 누군가는 납달리가 되어야 한다. 단이 있으므로 아셀이 있고, 잇사갈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 유다의 복을 받으면 왕은 많겠지만, 제사장은 누가 한단 말인가.

자신을 알고 그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주어지지 않은 것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태엽 안에서 바른 톱니가 되는 것. 그것이 야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야곱의 유언이 축복인 이유이다.

2007/08/02 17:08 2007/08/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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