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장 [열기]



요셉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이스라엘은 당장 짐을 싸서 애굽으로 내려갔다. 가나안 지역은 먹고 살기도 힘든 흉년이 계속되고 있었던데다가 죽은 줄 알았던 가장 아끼던 아들이 살아있고 또 아비를 부르고 있다 하니 아니 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떠나가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편하기만 할리는 없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과 더불어 오래 정착해있어 머물러 있는 생활에 익숙해져있다가 길을 떠나려니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하나님은 할아버지의 하나님이고 아버지의 하나님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그 자신의 하나님이시기도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내려가는 도중에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예전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시며 이스라엘을 달래셨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다. 사람이 마음에 근심이 없을 수 없으며,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염려가 없을 수 없다. 자기의 행동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고, 결과에 대해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무엇에게든 의지하고 싶어한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부모처럼, 형제처럼, 멘토처럼 다독여주고 감싸 안아준다. 난 언제나 네 편이다, 라고 속삭여주신다. 이럴진대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이랴. 이스라엘은 씩씩하게 그의 아들을 보러 발걸음을 옮긴다.

언약을 기억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브라함때부터 이방인가 피를 섞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던가 가나안 땅을 그 이삭의 후손에게 주시겠다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경솔하게도 그들은 가나안의 여인들과 혼인하고 아이들을 만들었다.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할 민족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굽에 내려와봐야 문제는 나아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강대한 애굽에 동화되고 흡수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을 꾸는 요셉은 한가지 방책을 마련했다. 일반인이 애굽에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요셉이기에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요셉의 가족이지만, 요셉은 그 가족의 거주지를 고센으로 제한시키고 목축을 계속 하도록 하였다. 애굽 사람들이 목축하는 자를 업수이 여기고 상대하지 않았던 이 시대에 총리의 가족이 목축을 한다는 것은 총리 자신의 지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테지만, 요셉에게는 총리의 지위보다 이방과 섞이지 않는 하나님의 민족인 자신과 그 가족의 위치가 더 중요했다. 애굽 여인과 혼인하여 민족의 피를 더럽힌 그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순결하게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그릇되기 쉽상이고 우리는 점점 어두운 길로 나아가려 한다. 문제는 우리가 어긋난 선택 후에 그 잘못된 갈림길을 만회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가 하는 것이다. 잘못된 길을 들어가면 조금 빙 돌아가더라도 바른 길을 다시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끼어들기를 하지 못해 부산까지 가게 되버리는 초보 운전자가 아닌 한 우리는 언제든 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은 지체되어서는 안된다.

2007/07/30 13:28 2007/07/3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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