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장 [열기]



요셉은 마지막으로 그 형들을 시험하고, 또 곯려주기 위해 계략을 짰다. 그리고 그 형들은 기가막히게 걸려들어, 베냐민과 함께 요셉의 집으로 다시 소환되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면 적당히 눈치 좀 채줘라 하는 것이 요셉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형제들의 재회의 감동을 더 높이고, 유다를 장자의 자리로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쉽사리 일이 풀리게 하지 않으셨다.

요셉의 앞에 선 형제들 중에서 앞으로 나선 것은 유다였다.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앞으로 나선 것은 물론 베냐민 때문이었다. 아비를 걱정하는 마음은 한결같겠지만, 애굽으로 내려오기 직전에 베냐민의 목숨을 담보한 것이 유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것으로 이스라엘이 유다를 장자처럼 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에서의 장자권을 얻은 이스라엘로서는 반드시 첫째가 장자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그리 뚜렷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게다가 첫째라는 녀석이 아버지의 첩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아버지가 아끼는 동생을 잃고 오는 둥, 여러가지로 신망이 떨어져버렸고, 둘째와 셋째는 주변 부족들에게서 그 가족을 위태하게 만들어서 위험한 녀석들로 찍혀버린터였다. 비록 자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얻은 유다이긴 하지만,
유다의 다짐에 베냐민을 보내어준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나마 그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기가 종으로 남겠다고 간청했다. 바야흐로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 줄기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방 여인의 믿음에 감동하여 혼인을 맺은 보아스, 잘못에 대한 즉각적인 회개와 돌이킨 후에 다시 같은 죄를 짓지 않은 다윗,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회개와 희생에 적극적인 유다에게서 시작한 위대한 피의 흐름이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일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용서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회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상처가 나면 벌어진 채로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싸매고 약을 바르고 서늘하게 두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아물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빠르고 흔적없이 아무는 것이다. 유다의 모습은 죄에 물든 우리가 받을 모습이다. 언젠가는 아물겠지 하고 상처를 그냥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2007/07/28 17:40 2007/07/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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