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열기]



시므온을 담보로 하여 받아온 양식이 다 떨어지자 이스라엘은 아들들에게
양식을 더 사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셉을 경험했던 아들들은 애굽의 총리가 두려워 베냐민을 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양식도 떨어졌고, 이제 어찌할 방도가 없게 되자 이스라엘은 자식을 잃으면 잃게 되리라고 결단을 내린다. 그제서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애굽으로 내려간 열 형제는 바로 요셉의 집으로 옮기워진다. 비록 그들이 자처한 일은 아니지만, 이전에 왔다간 일로 찔리는 것이 있는지라 불안불안해하던 형제들은 요셉의 집사에게 돈에 대해 실토한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집사는 그 돈은 그들의 것이라고 말해준다. 도대체 무슨 돈을 이미 받았다는 것인지, 어째서 돈도 받지 않고 양식을 준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들로서는 답답한 일들 투성이었다. 거기에 함께 식사하기로 한 자리에서 그들의 자리는 나이 순서대로인 것이 아닌가. 애굽에는 무언가 신비로운 일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므온을 무사히 만난 기쁨과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하는 불안에 쌓인 채, 요셉의 형제들은 간만에 본 진수성찬을 요셉과 함께 즐겼다.


은혜란 어떤 것일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긴 한데, 언제 주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시기가 따로 있으신걸까, 혹은 상황이 따로 있는 것일까. 자격이 있거나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 기도 한시간이라든가 십일조 3회 연속이라든가 전도 세 명당 은혜 한번이라든가...

은혜는 하나님의 무차별적이고 시공간 초월적인 선물이다. 사람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 내용에 제한이 없는, 쉴 틈도 없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고, 지금도 주어지고, 앞으로 주어질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생활에 포함된 것들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에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다던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던가, 걸어다니는 매커니즘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들은 한시도 우리에게서 떠나있지 않는 것들이다. 은혜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에게 늘 주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끔 우리가 정말 은혜받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하거나 어떤 류의 돌보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할때에,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이 왔을 때에, 혹은 얼토당토않는 일이 벌어졌을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기도 한다. 이것이 은혜의 조건이다. 하나님쪽에서 볼때는 은혜는 전혀 - 물론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 조건은 빼고 -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우리가 은혜를 은혜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나약함, 굶주림, 육체적 고통, 실패, 두려움, 약탈, 거짓 등등.

이스라엘은 베냐민과 다른 형제들을 무사히 돌려받는 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형제들은 그들이 되돌려 받은 돈으로 인해 걱정하고, 식사자리에서 장유차서대로 앉혀진데에 두려워하고, 무사히 돌아갈 것을 염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요셉은 그 형제들과 원만히 화해할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 각자의 평소 생활에서 뿌리깊게 내려져 있던 은혜가 있음에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그들이 평소와 다른 처지에 속하게 되니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알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구하는 것을 얻게 되는 일이나, 혹은 모습이 다를지라도 받게 되는 기도의 응답만을 은혜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은혜 역시 그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고 성령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모든 삶이 은혜의 연속이다. 새삼스럽게 구하거나 기뻐할 것도 없이 늘 우리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잘못된 간구와 은혜의 바람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순전한 믿음을 약화시키는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삶의 매순간순간을 기뻐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조건에 얽매이지 말자. 하나님을 제한하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둬두지 말자.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워있고, 은혜는 삶에 넘쳐흘러 타인에게, 타인에게로 흘러간다. 이러한 삶을 인정하고 기뻐함으로써 우리는 기적에 목말라하고, 감정에 좌우되며 세상에게 질타되는 우물속의 그리스도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7/07/27 12:01 2007/07/27 12:01

트랙백 주소 :: http://blog.sense4.com/sense/trackback/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