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열기]



기근이 애굽의 인접 지역으로 퍼져나가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애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야곱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야곱은 그 열 아들을 보내어 곡식을 구하게 했다.
하지만, 라헬의 두 아들들 중 남은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큰 어려움없이 살아와 안전한 신앙에 갇힌 야곱에게는
베냐민을 혹여 죽을지 모르는 긴 여행에 동참시킬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첫사랑인 라헬의 막내 아들이지 않은가.

풍년때에 곡식을 모으는 일과는 다르게
흉년의 곡식 판매는 무척 바쁜 일이었다.
요셉은 아마도 조금 한가해지면 가나안의 가족을 데리고 올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오랜 기간 인내와 용서를 배워왔고, 가정을 이루며 분노를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여유가 나지 않았기에 애굽을 치리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형들이 먼저 그를 찾아왔다.
어쩌면 그들은 여행길이나 애굽에서 요셉을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스마엘족속의 상인들 중에 있거나 애굽에서 다시 팔렸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설마 애굽의 궁정에, 혹은 애굽의 관리 중에 그 형제가 있을거라고 누가 상상했으랴.
덕분에, 그리고 많이 변한 모습에 요셉은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셉을 향해 엎드린 그 형들의 모습에서
요셉은 자신이 미움을 받게 된 원인인 꿈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막바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요셉은 마지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용서는 억울한 한쪽의 일방적인 베품이지만
한쪽만의 준비나 마음먹기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하는 쪽도, 받는 쪽도 모두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찾기 원했다면 아마 찾기는 쉬웠을 것이다.
히브리 노예 청년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루머와 스캔들이 있었을까.
이스마엘 상인들에 의해서 이야기가 각국으로 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애굽의 총리가 가족이나 같은 족속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직 그들은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오게 한다.
자신을 잃은 아버지 야곱이 베냐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요셉을 버리던 형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알게 해주기 위해,
그리고 형제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용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시므온을 가두고 형제를 보내어준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짓고 살아간다.
우리가 아무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기란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며 살아간다.
시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피 흘리심을 인하여
우리의 조건에 관계없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를 받기에 합당한가하는 얘기는 또 다르다.

우리는 용서를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같은 죄를 두번 다시 짓지 않으며, 우리의 잘못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죄를 인하여 슬퍼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베풀어지는 용서는 거름망처럼 다 통과해 빠져나갈 뿐이다.
무미건조한 습관적인 용서가 될 뿐이다.

주문처럼 읊조리는 감사와 용서의 기도가 되기 보다
먼저 우리를 돌아보아 용서를 받을만한 모습과 마음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2007/07/26 12:56 2007/07/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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