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열기]
하나님을 믿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는 요셉이라 하더라도
이어지는 나쁜 상황들이 달가울리는 없었다.
더욱이 지금은 옥중이 아니던가.
아무리 전옥의 신망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편할리가 없다.
하루하루 고된 생활을 하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꺼내주실려나 기다리던 어느날,
감옥에 신참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신참들은 왕궁의 식당에서 일하던 고위급 간부였다.
죄인이기는 하지만, 왕궁의 사람이기에 요셉은 성심껏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늘어나는 일거리들에 치여 살던 요셉이 시중을 들러
관원장들의 방으로 들어가니 그들은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왜 그런고하니,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무슨 꿈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꿈에 대해 일가견이 있던 요셉은 그들의 꿈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되어 꿈의 풀이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좋은 풀이를 듣게 된 술 맡은 관원장에게 탄원을 한다.
"제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거 당신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파라오에게 잘 말씀드려서 저 좀 풀어주세요. 제가 꿈 풀이 잘 해드렸잖아요."
하지만, 풀이대로 복직된 관원장은 즐거움에 겨워 그 일을 까맣게 잊고 만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일과 걱정거리에서 손을 놓고 하나님의 처우를 바라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간혹 뉴스에 나오듯 병에 걸려도 병원을 가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다던가,
공부는 별로 하지 않고 시험이 쉽게 나오기만을 기도한다던가,
별다른 노력도 없이 돈을 많이 벌게 되기를 기도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과 행위에 앞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 역시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의 모든 노력과 열심에 앞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놓쳐서는 안된다.
또 모든 행위에 대해 드러나는 결과는 하나님의 스케쥴 안에 있다는 것 역시.
요셉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활용한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살아왔던 요셉에게
꿈의 풀이를 못하는 이들이 온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왕의 신하이고, 복직될 것이 틀림없는 사람이 아닌가.
요셉은 그의 비위를 잘 맞추어주고 세심하게 부탁했다.
그에 대한 응답은 비록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훈련시키는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요셉은 이 일을 통해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더불어 꿈풀이 스킬도 레벨 업!
이후 있을 사건을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가르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너무 우리가 미리 상정한 결과에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많은 설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 하나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또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우주를 움직여가는 톱니바퀴이기도 하다.
하나의 톱니에 대한 결과가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톱니바퀴의 소망만을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소망과 응답의 괴리를 메꾸는 것은 요셉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기도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인 소망은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 매어주고,
관계의 가장 큰 결과물 중 하나인 응답은 우리를 하나님께 맞게 단련시킨다.
이것이 요셉이 그 생애동안 배우고 익히고 실천한 훈련이다.
응답을 믿고 소망을 고하되 응답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훈련.
우리의 삶이 힘겨울수록 더욱 닮아가야하는 것이 이러한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