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장 [열기]



동생이자 자식과도 같은 조카 롯이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처럼 전쟁에 휘말려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브람은 분노했고, 동맹군을 이끌고 추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의기양양 콧노래를 부르며 회군하던 연합군은
삼백여명의 동맹군에게 뒤통수를 맞고 무참히 참패하고 말았다.

조카 롯의 가족과 그의 재산을 되찾아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은 것은
연합군에게 된통 당한 소돔의 왕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었고,
아브람에게 축복하는 멜기세덱에게
아브람은 기꺼이 얻은 재물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궁금한 것 하나는,
히브리 족속을 선민으로 삼은 하나님께서
왜 살렘이라는 나라를 만드시고,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세우셨는가 하는 것이다.
멜기세덱이 상징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창세기는 대체적으로 상징보다는 사실의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살렘이라는 나라와 멜기세덱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아무튼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재물의 십분의 일을 주었고,
이것은 우리의 헌금 중 십일조의 시초가 되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었고,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국가 재정으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축복에 의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리라.

가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십일조를 위시한 각종 헌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돈을 내기 싫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핑계에 대해
헌금은 강요가 아니니 굳이 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와라 라고 대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예배에 따른 헌금은 강요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레위기에서 나오는 각종 제사 의례에 관한 설명에서 많은 부분을
제물의 종류나 제물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다.
제사에 따른 제물을 필수 요소인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 이후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물을 사용한 제물을 이용해서 속죄제를 드릴 필요는 없어졌다.
하지만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한 법이다, 속죄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축복의 제사에 대한 제물을 위하여 십일조를 드렸던 아브람처럼
우리도 제사에 대한 제물을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이고,
예배를 위한 제물은 당연히 강요되어야 할 듯 하다.

물론, 이로 인해 실족하거나 시험받는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에게도 피할 길을 주어야하겠지만.


너무 많은 자유와 선택이
동물을 잡아 피를 보아야하는 제사가 아닌
은혜와 복과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에 맞추어 먹어야 하지만 건너 뛰어도 상관없는 아침 식사처럼.

2007/06/27 20:08 2007/06/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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