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때 빠져들었던 것은 공부가 아니라 만화였다.
친구들과 인천 각지의 만화책을 파는 서점을 돌아다니며
만화를 탐독하고 애니메이션 LD를 VHS로 떠서 보며, 이론과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오타쿠라 불리는 골수 매니아의 초입길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는 용돈의 대부분이 그 취미를 소비하는데에 쓰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약간 그 소비가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중해야할 시기 역시 그 즐거움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아깝진 않다.
여전히 그 시절 샀던 책들은 (지금 사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그 시절의 VHS나 카세트테이프들도 여전히 내 물건꾸러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취미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취미를 즐기는데에 돈을 들이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소비영역이 넓어진만큼 소유자산이 많아지지 않은 탓도 있겠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도 있을테지.
게다가 요즘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만 부담하면
주머니에서 돈을 빼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그래도 가끔 DVD도 사고, CD도 사며, 음악을 듣기 위해 돈을 쓰기도 하고,
나름의 속죄는 하는 편이다.
어둠의 경로가 판치는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그래도 P2P가 모두 없어진다면 아쉬워할거다)
매니아는 특정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단순히 문화를 즐기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문화를 창조하는 이들 중에 땅파서 장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땅히 내놓을 것은 내놓으며 함께 누려야할텐데,
갈수록 우리에게는 그 나눔이 사라지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몇 푼 내놓는 것도 아까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 안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누림의 범위는 매우 좁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즐기기 위해 망설임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의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누구도 누릴 수 없도록 사멸되던가.
친구들과 인천 각지의 만화책을 파는 서점을 돌아다니며
만화를 탐독하고 애니메이션 LD를 VHS로 떠서 보며, 이론과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오타쿠라 불리는 골수 매니아의 초입길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는 용돈의 대부분이 그 취미를 소비하는데에 쓰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약간 그 소비가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자중해야할 시기 역시 그 즐거움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아깝진 않다.
여전히 그 시절 샀던 책들은 (지금 사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그 시절의 VHS나 카세트테이프들도 여전히 내 물건꾸러미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취미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취미를 즐기는데에 돈을 들이는 것은 주저하고 있다.
소비영역이 넓어진만큼 소유자산이 많아지지 않은 탓도 있겠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도 있을테지.
게다가 요즘은 양심의 가책을 조금만 부담하면
주머니에서 돈을 빼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그래도 가끔 DVD도 사고, CD도 사며, 음악을 듣기 위해 돈을 쓰기도 하고,
나름의 속죄는 하는 편이다.
어둠의 경로가 판치는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그래도 P2P가 모두 없어진다면 아쉬워할거다)
매니아는 특정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단순히 문화를 즐기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문화를 창조하는 이들 중에 땅파서 장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땅히 내놓을 것은 내놓으며 함께 누려야할텐데,
갈수록 우리에게는 그 나눔이 사라지고 있다.
음악을 듣기 위해 몇 푼 내놓는 것도 아까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얼마 안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누림의 범위는 매우 좁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머지는 즐기기 위해 망설임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의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누구도 누릴 수 없도록 사멸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