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의 시작은 파견이었다. 여의도에 있던 본사와는 거리도 먼 강남으로 뚝 떨어져서, 사장과 이사 이외의 직원은 근무장소에 도착해서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단 두 명.
그 후 일이 없어서 본사에서 빈둥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일을 해야 했고, 프리랜서를 시작한 요즘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소위 일용직 근로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동일한 패턴의 반복적인 생활을 오래하지 못하는 끈기없는 내게 사실 파견직 혹은 계약직이란 것은 꽤 맞는지도 모르겠다. 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고, 오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정도 내가 있을 기간을 내가 맞출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나온 후 얼마간 손놓고 놀고 있을 수 있다는 위험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에겐 이 단점도 마음끌림의 하나이다. 놀 수 있다니, 그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지극히도 내향적인 내게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거의 두려움과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간격을 효과적으로 좁히고 유지하는 방법이라든가, 구성단계에서 내가 참여하지 않았던 어떤 집단 속에 뒤늦게 합류하여 하나의 부분이 될 때의 충격을 잘 넘기는 방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전하여 낼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 싫다.
의도이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 그러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견직을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좋은 점도 물론 기여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뿐인걸까?
얼마전에 현선순장님이 어떠한 소명을 가지고 IT업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물어보지 않아 그 소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리고 이미 내게도 잊혀진 소명이었음직한 하나가 떠올랐다.
이 일을 하면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업무 종료 이후에도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족히 백여명은 넘을 듯 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난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보였을까. 내가 온전한 크리스쳔의 모습으로 보였을까. 아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미약하게나마 풍길 수 있었던가. 네임택에 그리 쓰여있었을지는 몰라도 아마 내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세상이 아는 지식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예수를 성경이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아는 사람들의 가슴에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는 일.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이유가 아닐까. 내 속마음처럼 이런 일이 그나마 돈을 더 벌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날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미 난 죽었는데도 말이다. 왕좌 위에 거만하게 서서 칼을 쳐들고 있는 날 끌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도...
덧. 그 전에 이 주체못할 대인기피를 어찌해야할텐데...
그 후 일이 없어서 본사에서 빈둥거릴 때를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일을 해야 했고, 프리랜서를 시작한 요즘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소위 일용직 근로자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동일한 패턴의 반복적인 생활을 오래하지 못하는 끈기없는 내게 사실 파견직 혹은 계약직이란 것은 꽤 맞는지도 모르겠다. 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고, 오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어느정도 내가 있을 기간을 내가 맞출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나온 후 얼마간 손놓고 놀고 있을 수 있다는 위험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에겐 이 단점도 마음끌림의 하나이다. 놀 수 있다니, 그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지극히도 내향적인 내게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거의 두려움과 공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과의 간격을 효과적으로 좁히고 유지하는 방법이라든가, 구성단계에서 내가 참여하지 않았던 어떤 집단 속에 뒤늦게 합류하여 하나의 부분이 될 때의 충격을 잘 넘기는 방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전하여 낼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 싫다.
의도이건 의도하지 않았건간에 그러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견직을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좋은 점도 물론 기여를 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뿐인걸까?
얼마전에 현선순장님이 어떠한 소명을 가지고 IT업계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물어보지 않아 그 소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리고 이미 내게도 잊혀진 소명이었음직한 하나가 떠올랐다.
이 일을 하면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업무 종료 이후에도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족히 백여명은 넘을 듯 하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난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보였을까. 내가 온전한 크리스쳔의 모습으로 보였을까. 아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미약하게나마 풍길 수 있었던가. 네임택에 그리 쓰여있었을지는 몰라도 아마 내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향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세상이 아는 지식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예수를 성경이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아는 사람들의 가슴에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는 일.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이유가 아닐까. 내 속마음처럼 이런 일이 그나마 돈을 더 벌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날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미 난 죽었는데도 말이다. 왕좌 위에 거만하게 서서 칼을 쳐들고 있는 날 끌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도...
덧. 그 전에 이 주체못할 대인기피를 어찌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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